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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무학의 통찰력으로 세상에 (혹은 가카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김어준. 대학 시절 무일푼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총수로 활약한 그는 이미 MBC 라디오 '색다른 상담소'에서 촌철살인의 독설로 유명했다. <건투를 빈다> 역시 '정면돌파 인생 매뉴얼'이라는 부제대로 두루뭉술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착한 해답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졸라! 씨바!' 두 단어로 요약되는 책의 내용을 무섭도록 현실적이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까지 있다. 물론 지금까지 제도권 교육 아래 정직하게 가르침을 습득한 나의 경직된 가치관 탓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 수긍하게 되는 점도 많았다. 나 (삶에 대한 기본 태도), 가족 (인간에 대한 예의), 친구 (선택의 순간), 직장 (개인과 조직의 갈등), 연인 (사랑의 원리) 다섯 파트로 구성된 Q&A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책이 내놓는 답은 다양하다.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거.", "생겨먹은 대로 사시라. 그래도 된다.", "계속 징징거리면 죽통을 날려버려라." 등등.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똑같다. 바로 '자아'를 찾으라는 것이다. 흔히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그것이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한다. 부모의 기대, 연인 간의 책임감, 친구 사이의 믿음처럼 문제는 가까운 사람에서 시작된다. 하긴 애정이 있지 않은 상대에게서는 실망조차 느끼지 않겠지만 말이다. 사실 인생의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자기 원하는 대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게 2012년 한국이다. 남보다 비루한 스펙, 나보다 빨리 승진하는 동료, 남보다 빈약한 통장,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 모든 관심이 '나'와 '남'을 가르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에 집중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게 김어준의 날카로운 분석이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이해하기 껄끄러운 부분도 물론 있었다. 관계에서 쿨해지라는 데 어디 그게 말처럼 쉽나. 쿨하지 못한 나는 찌질한 사람이고 자괴감만 더 생기는 악순환은......없었다. 다행이다. 그저 내가 겪는 고민이 오직 나 혼자만 겪는 특별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묘한 위로가 50%, 다양한 시각을 마주하며 타인을 만날 때 생기곤 하는 편견이 조금은 없어진 느낌이 50%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베스트셀러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깐 청춘이다>보다 오히려 지독히 현실적이기에 충격이 크지만 그 효과도 더 컸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는 따뜻하고 힘을 건네는 명언으로 가득 찬 진통제였다. 지치고 힘들 때 가볍게 읽으며 다시 동기 부여를 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내가 마주할 세상은 그대로다. 그저 그 순간의 위안과 만족에 그치는 게 지나고나서 드는 생각이랄까? 하지만 <건투를 빈다>는 무식하게도 상처 부위를 그대로 째서 수술해버린다. 세상은 원래 이따위로 생겨먹었으니깐 니가 변해야 한다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 제발 찌질하게 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좀 하면 살라고 건투를 빈다고 말하면서 시크하게 지랄을 한다. 하긴 세상은 훨씬 지랄 맞은 곳이니 김어준처럼 맞서 싸우거나 투덜거리지 말고 굴복하는 수밖에. 물론 그 선택에 대한 후회, 만족, 책임은 오로지 내 손에 달린 걸 명심하자.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거다. 실패를 준비하며 핑계를 마련해두는 데 에너지를 쓸 게 아니라, 토 달지 말고, 그냥,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그 일을 가장 제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되느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해보지도 않는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겠나. 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되길 바라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불쌍한 거다. 자기 인생에 스스로 사기 치는 거라고. 그리하여 난 꿈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외쳐야 한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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