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 30개의 키워드로 현대 철학의 핵심을 읽는다
남경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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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의 철학자, 30개의 개념.

무의식, 기표와 기의, 헤게모니, 계몽, 포스트모던, 패러다임.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은 현대사상을 대표하는 30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들을 정리해 놓은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여동생이 한창 대학 입학을 위해 속성 논술용(!) 책을 읽어볼 때 추천받았던 책인데 제가 대학교에 들어와 교양 삼아 부담 없이 읽어보니 간략하지만, 대략적인 흐름을 잡기에는 적절해 보였죠. (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딱딱한 책이 재밌게도 읽히고,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나 몰라요.) 지은이는 겸손하게도 '철학 혹은 사상을 사전식으로 공부하거나 핵심어로 요약해서 읽는다는 것은 사실 옳은 방법도 아닐 뿐더러 어딘가 모르게 입시 공부를 다시 하는 것 같아 대단히 불쾌한 생각도 듦 직하다.'라며  이야기했지만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했기에 저는 지은이의 책이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미셀 푸코, 장 폴 사르트르,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 현대 철학에서 주목받는 프랑스 철학자부터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까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 그들의 사유를 접할 수 있는 책이니 짬짬이 교양을 쌓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해 드립니다.

 

이성의 눈으로 어둠을 밝히자.

사실 철학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개념이란 찾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현상이나 개념에 대한 수많은 철학자의 해석과 재해석이 돌고 도는 식이죠. 이렇듯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철학사를 지배해 온 이성은 매우 커다란 존재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불안, 초조, 망상이 결국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전락시켜버리죠. 그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실체들이, 예를 들면 봉건 시절 절대왕정이나 종교적 지배 같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질서들의 부조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이성'은 (모든 것이 그렇듯) 절대적으로 옳은, 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도르노는 '반성적 기능을 상실한 이성',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이다.'라며 '도구적 이성'을 무기로 타락한 이성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도구적 이성이 인간을 소외시키다.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흔히들 올바른 판단을 권유하고 이끌어낼 때 '이성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현대 사회에 팽배한 '이성'은 빠르기는 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죠. 해방의 무기 역할을 했던 이성이 이제는 속박의 무기로 인간들을 다시 옥죄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지배하기 편하도록 자연을 양화 시켜 계산과 측정만이 가능한 존재로 치부했던 인간은 이제 같은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잣대를 들이밀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파시즘'입니다. 스스로 질적인 측면보다 양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인간을 하나의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전락시켜버린 것이죠. 글쓴이의 표현대로 '사유에 대한 사실의 우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에 오염되어 반성의 기능을 상실한 도구적 이성은 초창기 계몽의 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정의 등의 도덕을 낡은 이념으로 간주하고, 지배를 위해 파괴와 공격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왜 히틀러에 열광했는가?

파시즘과 독재를 구분 짓는 기준은 대중의 지지에 있습니다. 압도적인 지지와 광기 어린 열광 속에 히틀러는 독일의 신으로 등장했고 너무나도 '이성적'이었던 천재 철학자 하이데거도 나치즘을 논리적으로 찬양했죠. 그들 모두는 충분히 이성적이었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과 동일성을 지니지 못한 타자를 제거해나갔습니다. 아도르노가 전체주의를 경멸하고 개인의 특수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것은 아마 그 역시 아우슈비츠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을 유태인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치즘에 물든 파시스트가 동일성에 대한 '이성'적이며 '비이성'적인 욕망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유태인은 '교환 불가능' 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유태인이라는 주홍 글씨를 새긴 채 '특수성'을 가진 개체는 말살되고 '일반성'으로 묶인 전체만이 남았을 뿐이죠.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인간을, 같은 인간이 기계적이고 매우 합리적으로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판적 이성의 눈으로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자!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해결하는 힘은 이성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성입니다. 아도르노는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문제 자체에서 찾았습니다. '이성은 대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라는 비판적 이성 개념을 이용해서 말이죠. 그는 헤겔 철학에서 뒤편에 밀려났던 '비 개념적인 것'을 재해석하며 개인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유를 뒤집습니다. '단독적인 것'의 특징을 존중하고 '우리는 하나'라는 신화와 같은 주장을 의심해보고 비판적 이성의 눈으로 날카롭게 성찰해야 합니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파시즘은 언제든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무작정 유학생에게 집단 폭행을 퍼붓는 네오나치, 외국인 선수에게 모욕적인 조롱을 날리며 인격적, 신체적 피해를 주는 훌리건. 극단적이고 눈에 보이는 전체주의만이 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뿌리 뽑기 어렵고 무서운 것은 바로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파시즘의 불씨들이죠.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르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상대를 평가해버리고 편견으로 대한다는 것. '한' 민족, '한' 가족, '한' 핏줄, '한' 나라. 아무런 의심 없이 주입되어왔던 관념들에 이끌려 우리도 모르게 타인을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이성적인 행동일까요?

예전에는 철학의 문제는 철학자의 문제였으며, 철학은 철학자의 분야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만화, 매체 등등 현대 문화의 모든 장르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철학적이라고 말해도 좋은 지적 배경을 등에 업고 전개되고 있다. 지금 시대의 지적 흐름은 이제 철학자 사회의 문턱을 넘어 일상생활의 공간 속으로 흘러 넘치고 있는 것이다.

( ……)

여기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서로의 책을 그다지 열심히 읽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동시대성을 보여 주고 있다. 비록 그들 각각은 동시대성을 부인할지 몰라도, 그리그 그들 각각은 자신의 철학적 내용이 고유한 것이라고 항변할지 몰라도, 그들을 읽는 우리로서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동시대성으로 읽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다양성보다 공통점을, 차이보다 동일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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