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 당신의 착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 방!
무옌거 지음, 최인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추운 겨울 해물찜을 먹으려고 기다리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왜 꼭 고춧가루가 붙어있는 더러운 부분은 뒤늦게 보이는 걸까? 그냥 다른 컵으로 마시자 생각하고 넘어갔다. 곧바로 해물찜이 나왔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머리카락이 한가닥 새우껍질에 달라 붙어 있었다. 식당 주인을 불러 음식을 바꿔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슬쩍 머리카락을 빼냈다. 괜히 위생상태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음식이 맛있었다고 자위했다. 실제론 그냥 맵기만 하고 그저그랬는데.


# 태국 여행을 가서 우버나 그랩도 잡히지 않는 후미진 골목에서 겨우 택시를 잡았다. 미터기를 켜달라고 했지만, '노미따~'를 외치며 계속 비싼 금액을 불렀다. 그냥 내리는 시늉까지 했지만,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기사는 그리 당황하지도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알고도 사기를 당하는 심정으로 택시를 탔다. 오는 내내 차도 꽉 막히고, 뒷자리를 강타하는 음악은 시끄러워 신경을 긁었다. 겨우 호텔로 돌아와 내리면서 바가지 금액을 내면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Thank you". 고맙기는 커녕 불쾌하고 짜증났는데.


어려서부터 “착하다.”, “순하다.”, “얌전하다.”는 칭찬을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딱히 그런 칭찬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많은 상처를 입은 후에 아마 이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본성이 착한 사람보다는 개성이 분명하고 성질부릴 줄 아는 사람이 훨씬 잘 산다고 말이다. _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니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착하다'는 수식어를 많이 들어왔다. 너그럽다, 협동심이 뛰어나다, 배려심이 깊다, 양보심이 많다. 이런 비슷한 류의 평가가 학생부에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창시절 남에게 욕을 해본적도 없고, 싸움에 휘말린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온갖 진상을 마주하다보니 내 성격에 대해 스스로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단호하게 내 몫을 챙기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할일만 하면 되는데 어느순간 도움을 청하기 좋은 만만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그런 과정에서 뿌듯함, 성취감을 느끼면 상관없지만 제법 이기적인 나는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일 뿐이었다. 그걸 애써 지나치기 위해 합리화를 하는 꼼수만 늘어날 뿐이었다. 언젠가는 복으로 돌아올 거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줄거다, 이러면서 배우는 게 있다.

개뿔.

나는 그저 불편한 게 싫어서 그 상황을 피하는 겁쟁이였던 것이다.

타인을 과도하게 허용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학대다. 온화하고 선량한 것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무기인 ‘까칠함’도 갖춰야 한다. 기억하자.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부드럽게 변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_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는 거절하기 힘든 사이일수록, 매일 마주하는 관계일수록, 가깝고 소중한 상대일수록 "태도는 부드럽게, 행동은 단호하게"해야한다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이었다. 친한 사이는 커녕, 처음 보는, 심지어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도 쓴소리를 하기 꺼리는 내게는 와닿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는 반복되고, 엄청난 깨달음을 주지 않는 뻔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빨간줄로 그어진 부분만 술술 읽고 넘어가도 충분하다.) 하지만 당신의 착함에는 '가시'가 필요하다는 처방전은 하나하나 와닿았다. 사실 이런 단호함, 쓴소리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여러가지 표현으로 우유부단함, 비겁함이 나에게 어떤 해가 되는지, 나아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읽다보니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시부럴.

아닌 건 아닌 거고, 내가 다 뒤치다꺼리할 필요는 전혀 없다. 타인을 향한 선의, 동정심이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오지랖이자 호구짓이 되는 거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일이 있다. 내 일, 남의 일, 하늘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일은 아예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범위에 있고, 남의 일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결국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인내심이 주요 덕목으로 손꼽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중국, 대만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른 걸 보면 그들도 비슷한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학교, 가족, 사회, 군대 등 어느 조직을 가든 본인을 희생하고 고통을 참아내는 게 미덕이라 주입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착한 사람도, 철저하게 악한 사람은 없다. 그저 자기가 처한 상황에 스스로 제일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본인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니 나름인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모든 이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부터 고쳐먹어야한다. 착하다는 건 어찌보면 호구에게 전하는 당근의 탈을 쓴 채찍일 수 있다. 남의 일은 남의 일이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의 일을 철저히 해내면 그만인 것이다.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인간관계에서 늘 약자로 슬퍼하기 보다는 부드러운 단호함을 키울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만사가 불만이고,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내 몫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거고, 많은 부분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할 사람이 많아질수록 느끼는 바가 많다.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절박함을 느끼기도 하고. 나만 착한 사람, 인정 넘치고 여유로운 사람 코스프레를 하면서 선비마냥 뒷짐질 때,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내 곁의 사람을 싸움닭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내가 당당하게 말하면 쉽게 풀릴 일인데도, 옆사람이 힘겹게 겨우겨우 싸워서 얻어내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거절당할 게 무서워서 거절을 안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지랄.

극단적으로 오지랖을 부리고 욕을 하며 바득바득 싸우라는 건 아니지만. 아니다 그런 마인드로 우리 밥그릇은 지키겠단 마인드를 가져야지 그나마 남들 하는 것만큼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 더 악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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