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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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접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글 안에서 느껴지던 갑갑한 한여름 열대야의 밤처럼 축축하게 젖어드는 듯한 그 압박감이 소름을 오소소 돋게 만들고

그 보다도 더 캄캄하기만 한 세령마을의 모습이 마치 다녀온 곳인것 처럼 그려졌었죠.

이 소설 이후 정유정 작가의 책은 저에게 있어서는 믿고보는 안전빵의 글입니다.

신간소설이 나온다는 소식에 #알라딘 에 예약구매를 걸어두고 출간되기만을 내내 기다리고 있던 터에 작가님이 #유퀴즈 에 나와 그동안 써왔던 글과에서 느껴지는 모습과는 달리 엉뚱함과 유쾌함의 매력까지 어필하였으니,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갑니다.

그래서 도착한 책을 바로 펼치고 싶은 욕구를 참고참아가며, 먼저 읽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고 책장을 펼칩니다.

역시나는 역시나, 우선 펼치는 순간 책의 몰입감이 어마어마합니다.

신유나는 지유라는 딸을 키우고 재혼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유 접견을 피했던 신유나와 만났던 전 남편이 실종이 되고 이 실종의 과정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됩니다.

 

"행복하게 사는 거."

행복을 원치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는 자신도 같은 것을 원하다고 말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자는 거라 덧붙였다. 그녀는 물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 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 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하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p.112 ~ p.113 1부. 그녀의 오리들

어려서부터 언니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던 신유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무엇인가를 더하고 합쳐, 고난을 극복하며 좋아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것들, 어려운 것들, 껄끄러운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면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책을 다 읽은 후 덮는 순간 알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게 하는 이 책에서 신유나의 피해자인척 하는 태도는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너희들이야."라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가시켜버립니다. 너 때문에, 너만 아니었으면 이라는 피해의식은 가해자가 아닌 사람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하는 행위를 정당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향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가해를 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p.354 ~ p.355 3부. 완전한 행복

주인공 신유나라는 사람의 감정은 스위치 하나로 딸깍딸까 조절이 되는 것처럼 무시로 오갑니다.

그러데 그 감정의 틈이 발생하는 원인조차 본인의 의지가 아니고, 본인이 원인이 아니고, 결국 너 때문입니다. 그런 무차별의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 피해자의 삶에서 정상적인 사고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본인에게는 감성적으로 대하길 바라지만, 타인에게는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 고통을 만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본인의 행동따위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것은 너 때문이야, 그래서 그로인해 야기된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 때문이야로 잘못된 행동에대한 책임전가를 하면서 본인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합니다. 본인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나를 해하거나, 남을 해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습니다.

학 시절, 담임이 '직각의 순간'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어떤 세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이해해내는 섬광 같은 순간이라고. 지금이 바롤 그 순간이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무의식의 막이 한손에 찢겨 나갔다. '설마'라는 저항의 벽이 한 방에 부서졌다. 갇혀 있던 상상이 급류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런 걸 상상할 수 있는 자신의 머리통이, 정말이지 끔찍스러웠다.

가서 확인해. 다시 자아의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자물쇠가 잠겨 있던 2층 방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보라고, 자물쇠든, 문이든 때려 부수고 들어가란 말이야. 있다면 그 상상은 망상이겠지만, 없다면......

p.366 3부. 완전한 행복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알지만 믿고 싶지 않은 순간이면 그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혹시"가 "역시"가 되는 순간.

"설마"가 사람잡는 순간......

벌어져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져 버렸고, 나는 그 순간을 알아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시 정유정", 정유정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7년의 밤>에서 느꼈던 그러한 감정들이 다시 오롯이 느껴집니다.

끝까지 법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범인이 누군지 첫 챕터를 읽고나서 알게됩니다. 이미 범인은 알지만, 제발 그렇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본인의 삶을 망치지 말라고, 이제는 그만 멈춰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삶이 어그러지는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집니다. 특히나 지유의 아픔이 따갑게 다가와서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사이코패스 는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하지 못한다고 하니 말그대로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맙니다.

 

 

"행복하게 사는 거."

행복을 원치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는 자신도 같은 것을 원하다고 말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자는 거라 덧붙였다. 그녀는 물었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 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올 줄은 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는 머뭇대다 대답했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하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 P112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향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가해를 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 P354

중학 시절, 담임이 ‘직각의 순간‘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어떤 세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이해해내는 섬광 같은 순간이라고. 지금이 바롤 그 순간이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무의식의 막이 한손에 찢겨 나갔다. ‘설마‘라는 저항의 벽이 한 방에 부서졌다. 갇혀 있던 상상이 급류처럼 쏟아져내렸다. 그런 걸 상상할 수 있는 자신의 머리통이, 정말이지 끔찍스러웠다.

가서 확인해. 다시 자아의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자물쇠가 잠겨 있던 2층 방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보라고, 자물쇠든, 문이든 때려 부수고 들어가란 말이야. 있다면 그 상상은 망상이겠지만, 없다면......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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