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 젠더 평등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마이클 코프먼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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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위근우의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읽은 책. 남성 페미니스트, 혹은 ‘남성 페미니스트 앨라이‘(이 책에 위근우 작가가 추천사를 쓰며 그 표현을 썼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남성으로 살고 있는 편집자는 어떤 책을 기획해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달갑지 않았다. 결국 이 ‘전쟁‘을 끝내는 건 남성이라는 걸까, 결국 주체적 위치에 서겠다는 표현이 아닌가. 하여. 심지어 원제는 ˝The Time Has Come˝인데, 이는 지나친 초월번역(?)이 아닌가 싶었다.

이와 같이 다소 미심쩍은 마음으로 읽어간 책이다. 하지만 읽고나니 이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이 남성에게 이야기할 때 이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남성에게 손 내미는 남성,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그 지점이 아닌가 싶다. 아마 제목은 그런 톤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뽑아낸 것이리라 생각된다.

페미니즘이나 가부장제 철폐가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많은,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는 선에서 동조하는 목소리 역시 함께 터져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위근우의 책도, 이 책도 소중하다. 나는 세상의 어떤 목소리를 책으로 펴낼 것인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고민할 문제다.

이것은 내가 나의 모든 활동에 적용하는 접근법과 동일하다. 직장 내 평등을 위한 활동이든, 남성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위한 활동이든, 여성의 재생산권을 지지하는 활동이든 마찬가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성을 동맹군으로 여기자. 변화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들고 남성에게 손을 내밀자. 동료 남성에게 변화를 촉구하되 남성 지배 사회에서 남성이 겪는 기이하고 종종 고통스러운 경험의 역설을 이해하자. 남성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과 자신이 범하는 실수를 진심으로 돌아볼 수 있게 돕되 집단 전체에 죄나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는 말자. 광범위한 이슈에 관하여 폭넓은 공적 연대를 이루어 다른 문제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힘을 합치자. 특히 여성과 여성 단체와 연대하고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성의 지도력과 힘을 배우자. 남성도 변화할 수 있고 괜찮은 사람일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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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오답이 아니라 정답이 하나라는 사고방식이다.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건 의미의 파시즘‘이다(전체주의는 아예 말을 못하게 하지만, 파시즘은 하나의 의미로만 말하게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의미만 고집할 때, 현상의 주름 사이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를 놓치게 된다. 세계는 기본적으로 다의적多意的, polysemic이어야 한다. 의미의 다양성은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단일한 해법만을 강요하는 모든 소박한 인식들. 이는 세계의 다양한 의미와 관계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맞선다. 의미의 다양성을 수용하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다르게 살아가는 모든 생활인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며 인정할 줄 아는 공동체를 그려 본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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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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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고 유익했다. 내게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에 필적할 만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내 주변 사람을 설득할 때 이 이야기를 꺼내 보면 괜찮겠다, 무턱대고 들어오는 공격에 이렇게 반박하면 되겠구나, 하고 감을 익힐 수 있어 좋았다.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통렬하게 비판하고 시원하게 비꼰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일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정말 오랜만에 웃으면서 읽었고, 크게 배운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았다. 위근우 작가는 공고한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뒤의 사람들은 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게 최선일까 하는 문제의식,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남성 발화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최선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이건 뭐 끝까지 파 봐야 알겠지.


정치적 선언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실천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그 자체로 어떤 자격이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란 자신이 속한 남성 중심적 사회에 스민 여성혐오적 관점과 편견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반성하며, 자신에 대한 여성들의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든 의도와 상관없이 성 불평등 구조 안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잊지 않는 그 모든 실천으로서만 존재한다.

물론 논쟁에서 모르는 걸 솔직하게 물어보는 태도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질문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보자. 내가 이걸 모르고 있는 건, 혹시 모르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던 나의 특권적 위치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제대로 이해할 준비(공부)를 하고 다시 의문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는 아닐까.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말뿐인 정중함보다 중요한 공론장에서의 진정한 예의일 것이다.

강자가 안전한 곳에서 낄낄댈 자유를 위해 약자들의 실존적 자유가 억압된다면, 무엇을 억제해야 할지는 꽤 명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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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 결혼 페미니즘프레임 3
정지민 지음 / 낮은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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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가장 단순하게 접근한다. 페미니즘을 좀 더 범박하게 정의해 보기로 한다.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 나아가 여성이 가져 마땅한 정당한 권력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하나의 이미지, 단일한 목소리밖에 없다는 것은 그 집단이 소수라는 방증이다. 페미니즘 역시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달성된 사회란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느슨하고 낙관적인 페미니스트도, 흐릿하고 망설이는 페미니스트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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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친절하고 관대한 태도로 타인과 윤리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적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해보지도 않고 그 사람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관계의 윤리학이란 어떤 부분은 영원히 얽힌 채로, 질퍽한 채로,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현대 이론가들은 아포리아(해결할 수 없는 내적 모순)와 존재론적 난제 안에 기꺼이 머물겠다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급한 해결을 요구하는 대신 관계의 교착 상태 내에 오래 머무는 것은 매우 윤리적인 태도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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