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겪고 나는 변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도 근본부터 바뀌었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진가로서 가장 신뢰하던 ‘보다‘라는 행위에 의문을 품었다. 아니, 의문을 품었다기보다는 ‘보다‘ 라는 행위에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통감했다는 게 적절하겠다.
보청기를 끼지 않기 시작한 스무 살 이래, 세계를 오로지 보면서 살아왔는데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라는 생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무시한 셈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표면을 눈이 훑은 것에 불과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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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이 우는 아이였는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엄마는친구에게 보청기를 빌려 왔다(사실 보청기는 개인의 청력에 맞도록맞춤 제작한다). 부모님은 그 보청기를 서로 번갈아 끼고 나를 돌보았다. 보청기의 출력음을 가장 크게 해놓아도 잠이 들면 소용이 없어 엄마는 나의 작은 발과 자신의 손을 실로 묶고 잠에 들었다. 내가 움직이면 실을 통해 그 움직임이 엄마에게 전해져 나를 한 번 살펴보고 다시 잠들었다. 행여나 알지 못할 이유로 아이가 죽지는 않을까 엄마는 나를 보고 또 보며 길렀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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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모든 신화는 이 세상과 더불어 존재하는 다른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 세상은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강력한 실재, 신들의 세계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실재에 대한 믿음은 신화의 근본적인 주제이다. - P10

신화는 소설이나 오페라, 무용극처럼 꾸며낸 이야기다. 파편적이고 비극적인 우리의 세계를 변형시켜보는 놀이다. 신화는 "만약 이렇다면?" 하고 물음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어렴풋이 보여주었다. 그 물음은 철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 분야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대다수를 가능케 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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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역시 ‘독자‘예요. 독자가 좋아할 요소가 있는지 봅니다. 타인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글에 담겨 있는지 봐야죠. 그런 글을 쓴 작가는 출간 이후에도 독자와 잘소통하는 편이에요. ‘나’만의 글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가는 글이라야 해요.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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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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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극단까지 가면 무엇이 나올까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삶을 적당한 선에서 흔들어놓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 P151

당장 급박한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상대를 악의 축으로 몰아넣고 그에 대한 어떠한 이해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 일이 필요할 수 있다. 어쨌든 선악의 대결구도만큼 자극적이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입장이 아니라면, 맥락 없는 괴물 따위는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말은, 당장의 선악을 구분하는 말보다는 전체의 맥락이나 거시적인 구조에 대한 생각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말일 거라고 생각한다. - P284

나는 끊임없이 판단을 유보할 것이다. 누군가가 적군 혹은 악마라는 확신은 가능하면 미룰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여유가 허락하는 한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이 놓인 맥락과 입장을 헤아려보고자 할 것이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상처 주는 일 정도라면 이해하는 쪽을 더 택하고 싶다. 그냥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이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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