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 2017년 18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강영숙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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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중 박민정이 <당신의 나라에서> 보여주는 세대감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현대사의 여러 국면을 성찰적으로 재구성해내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소설 역시 당대적 윤리의식을 앞세운 사회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1991년 레닌그라드로 소급되는 <당신의 나라에서>는 학대, 성폭력의 깊은 상처를 소환하여 약자의 윤리감각으로 우리 사회의 폭력성과 무감각을 대면시킨다. 손홍규의 <눈동자 노동자>역시 한 젊은이의 죽음을 계기로 애도와 죄의식에 휘말린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고뇌가 느껴진다. 통증을 감각하고 앓는 인물, 그리고 그를 포위한 농촌의 가난한 가족 이야기가 실감있게 포개져 묘한 색체의 소설이 되었다. 표명희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은 앙코르와트 여행담을 외형으로 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셈속 밝은 현지 가이드를 통해 자신의 허위의식을 깨닫는 서사가 인물이 제 인생을 간파하는 성찰로 자연스럽게 도약하는데 이 정직한 글쓰기의 힘은 은근히 강했다.

강영숙의 <어른의 맛>은 사십 대 중년이 겪는 심리적 성장통이라 할수 있다. 불안과 피로, 권태가 상존하는 비루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인물이 생의 누추를 추슬러낼 때는 울림이 컸다.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근래 김금희 소설의 광휘가 그대로 담긴 작품이다. 젊은 인물들의 꿈과 일상이 마모되어가는 상실감이 매우 쓸쓸할 뿐 아니라 이 특유의 정서가 직관적이고 리드미컬한 문장에 실려 위무하는 힘을 생성하고 있다. 기준영의 <조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자매가 크리스마스 전야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로 정교한 구도에서 번져오는 희미한 온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어린 시절 두 자매가 눈 내리는 밤길을 뛰며 !”하고 외치는 영화적 장면은 자매의 인생에 드리운 고난, 고통, 상처를 마법처럼 잘라내는 느낌을 주며 작가의 장기를 요약해 보여준다. 조경란의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는 문체가 압도하는 소설이다. 핏줄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가족을 물린 자리에 남들과 맺어지는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앉히면서 풍부한 암시와 상징을 동원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을 타자로서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자의식 강한 문장들도 눈여겨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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