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눈의 소녀와 분리수거 기록부
손지상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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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같은 표지에 당연히 일본 소설인줄 알았지만, 일본 노블을 많이 번역한 손지상의 작품이다. 손지상은 소설가, 서사작법 연구가 만화 평론가, 번역가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본인에게는 일본 노블 번역가 중 한 사람이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인상 깊에 읽은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을 쓴 곽재식 작가와 <아직 끝이 아니야>라는 한국 환상문학작품집을 낸 이력이 있는데, 이 작품은 아작이라는 SF에 강한 출판사와 한국장르소설계의 대표작가들의 만남으로 장르불문 기이함을 넘어선 매우 특색있는작품만을 모아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이번 그의 소설 역시 매우 독특하고 신선할 것이라 기대된다. 꿀잼 보장 미스터리 하드보일러 버디물이라 광고하는 <죽은 눈의 소녀와 분리수거 기록부> 과연, 라이트노블의 가벼움을 살리면서 하드보일러스러운 미스터리를 써낼 수 있을까?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가 아닌 거.

일종의 정보. 일상의 로그파일.

고고학적 유물처럼 하나하나가 삶의 조각인 거.

신문 스크랩 같은 거.‘

일본에 살다 7년만에 귀국하는 아들 마동군. 보디빌더 엄마를 둔 탓에 택시기사가 용인대 유도선수라고 착각할 정도의 우람한 체구를 가졌다. 하지만 실상 그는 발레를 전공했고, 현재는 부상을 당해 포기한 상황이다. 한국에 와서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에 온 마동군을 반기는건 한 때 세계적인 발레리노 였고 지금은 한국이 사랑하는 예능인이 된 아버지 마리아노. 집안에서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체주의자에 괴상망측한 모습으로 발레포즈를 유지하는 철부지 아버지이다. 도착한 집안은 쓰레기 투성. 결국 마동군은 짐도 풀지 않고 쓰레기봉투를 먼저 들게 된다. 그리고 마동군은 집 근처 쓰레기 버리는 곳에 수상한 그림자와 메마른 캔과 캔이 부딪치는 메마른 쇳소리가 듣더니, 작은 체구의 수상한 소녀와 마주하게 된다.

 

덩치가 작고, 포니테일의 소녀. 광채를 잃은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죽은 눈의 소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졌다. 마동군은 남의 집 앞의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영 찜찜해 그 소녀에게 말을 걸고 뭐하냐고 묻자, 그 소녀는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가 아니라 삶의 조각이다라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쓰레기를 헤집기 시작하고, 심지어 처음보는 마동군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얼마 뒤, 마동군은 중고 직거래 현장에서 검은 마스크와 하얀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서로 거래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사기꾼 이라는 비명에 달려들어 피해자를 도와주게 된다. 이 때 부서진 안경 때문에 아버지와 한 안경원으로 향하게 되고, 이 안경원에서 그냥 안경원이 아닌, ‘매립지의 일원들이 마음의 쓰레기를 버리는 아지트라며, 방공호 입구같은 뭄 뒤에는 정신과 분노의 방이라는 수상한 내부 공간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하드보일러 버디물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의도에 맞게 만들어진 유쾌하고 발랄한 면이 부각되는 만화같은 느낌이 더 인상깊게 다가온다. 저자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우람한 체구를 가지고 발레 스튜디오를 찾아간 장면을 찍은 사건을 담아둔채 도전의식을 가지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SF 호러 스릴러 장르에 속하고 무겁고 괴기하고 엄청나게 폭력적인 성향의 작품들을 써왔지만 이번에는 가볍고 발랄하고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작품을 쓰려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

발레리노에 나체주의자의 아버지와 보디빌더 어머니의 아들로 스모를 할정도의 체구를 가졌지만 발레를 했던 주인공. 설정자체가 B급코미디만화에나 나올법한 설정이랄까? 하지만 의외로 평범한 그. 오히려 그의 주변인물들 매립지 일원인 성지은, 마리아노, 윤수지, 템파 같은 캐릭터들이 재기발랄하면서도 비상한 재주꾼들이고 톡톡튀는 개성파들이라 대사하나하나 장면하나하나가 만화나 만담의 일부를 떠오르게 만든다. 현실의 쓰레기 만큼이나 무겁고 처리하기 어려운 마음의 쓰레기. 그것들을 분리수거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성장, 힐링, 코믹물. 전체적으로 만화같은 구성의 소설이지만 가끔 마음에 와닿는 대사도 있으니 성인들도 가볍게 읽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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