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마가파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화제가 된 <색계>. 하지만 실상은 중국 현대문학 대표작가인 장아이링의 작품으로 더 유명하다. <색계>는 실재 있었던 국민당 간부 암살 미수 사건을 소재로, 애국대학단원의 스파이인 여자주인공이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정보국 대장을 암살하려하지만 사랑에 빠지고만 애달픈이야기. 이 소설(영화)은 당시의 30년대의 홍콩배경을 잘 보여주고, 살인 임무라는 소재, 유혈이 낭자한 누아르적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섬세한 감정묘사로 사랑과 욕망, 이별과 단절이라는 로맨스를 잘 보여주었다. 이런 <색계>가 남남버전이 있다면? 좀 더 누와르적 색이 진하다면? 이번에 소개할 마가파이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이 그렇다. 1930년대 법보다 주먹이 앞선 시대, 그 시대 속 남남의 금단 로맨스와 홍콩 암흑가의 애수와 비정함을 담은 소설을 소개한다.

 

 

좆대로 되라고 해!”

꼴리는 대로든 좆대로든 상관없다.

욕 한 마디 내뱉고 나면 아무리 나쁜 일도 별것 아닌 일이 된다.

받아들일 수 있거나,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게 되거나다.

어차피 받아들이든 말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만이다.

요즘 세상이 난세라고 하지 않던가?

난세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결과는 혼란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헛된 노력 들일 것 없이 혼란 속에 파묻혀 내 맘대로 사는 게 낫다.

p.26

 

1930년대 록박초이는 목공일을 하며 허스 진이란 작은 마을에서 산다. 그 곳에서 아귄을 만나 열일곱살이 되던 해에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혼은 순탄지 않는다. 어느날 그녀는 어릴적 아버지에게 겁탈당하고 어머니가 준 탕약을 먹고 유산을 한 사실을 고백한다. 남편인 록박초이는 아내인 아귄의 고백을 듣고, 자신 역시 어릴적 작은아버지에게 겁탈 당한 과거가 있음을 떠올리지만, 차마 자신의 과거는 털어놓지 못한다. 아내(아쥔)의 고백이후 결혼생활은 삐걱거리고, 아쥔은 록박초이에게 욕설과 폭력을 퍼 붙기 시작한다. 난폭해져가는 아쥔을 견디지 못한 록박초이는 그녀를 떠나 군에 입대하고 공병대에 배치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신과 폭력의 끝에 쫓겨나듯 도망치게 되고 홍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몸이 전 재산인 록박초이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어 인력거를 끌게 된다. 오후부터 저녘까지는 호스티스들과 노닥거리다가 밤이 되면 집에 와서 남자들과 왁자하게 떠들며 술을 마시는 일상. 그러던 중 영국인 경찰 모리스의 눈에 들어 그의 정보원이자 애인으로 살게 된다. 모리스로 인해 록박초이는 자신의 새로운 성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물론, 홍콩의 어두운 뒷세계로 들어서는 위험한 삶이 시작 되는데...

 

남남판 <색계>라는 별칭으로 홍보를 한 소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읽다보면 왜 그런지 수긍이 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30년대 홍콩의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릇된 욕망과 왜곡된 사랑, 그것으로 인한 파국과 비극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면이 <색계>를 떠오르게 만든다. 작은 마을의 목공수에 불과했던 록박초이(록남초이)가 시대와 개인에게 당한 폭력으로 인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면서, 결국 암흑가인 삼합회의 논리를 익히고 전쟁을 기회 삼아 두목으로 거듭나는 과정. 파국과 파멸로 치닫는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사와 홍콩 30년 격랑의 시대에 도박과 섹스 마약으로 환락과 쾌락으로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남성의 비극적 생존과 성적 정체성을 찾지만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금단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색계>를 좋아했다면 즐겁게 읽을 만한 소설이다. 색계보다는 좀 더 외설적으로 폭력적으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시대자체가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런 시대였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그 수단도 허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에, 읽다보면 이 과격한 소설 또한 어느 로맨스처럼 섬세하게 읽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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