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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 카렐 차페크 희곡 ㅣ 10대를 위한 책뽀 시리즈 4
카렐 차페크, 조현진 / 리잼 / 2010년 10월
평점 :
과학자 로숨은 인간을 직접 창조하고 싶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인간과 유사할수록 그 생명은 4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아들 로숨박사는 아버지 연구를 이어받지만, 인간을 창조하는데는 관심 없었다. 그는 로봇 유니버설사를 만들어, 노동하는 기계로 특화시킨 로봇을 대량생산한다.
“가장 훌륭한 노동자는 가장 값싼 노동자예요. 최소한의 욕구만 가지고 있는 노동자이지요... 일과 관련 없는 부분을 전부 없앤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그는 노동자에서 ‘사람’을 빼고 대신 ‘로봇’을 집어넣은 거예요.”
Robota에서 유래된 로봇은 원래 체코어로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에겐 영혼도 필요 없다. 생산비용만 높아질 뿐이다. 로봇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위험한 일을 할 때 몸을 망가뜨린다. 이것이 로봇 유니버설사가 고민하는, 노동하는 로봇의 유일한 단점이다.
인간의 모든 노동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세상을 더 좋아질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을까? 인류는 노동을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사람들은 노동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점점 나태해진다.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뻗는 일조차 귀찮아하며, 심지어 애를 낳는 것까지 포기해버린다.
“이제 인간은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 고통을 느낄 일도 없어요. 그저 즐기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오, 이건 저주 받은 낙원이에요!”
정말 저주 받은 낙원이다. 그들은 노동하는 인간이야말로 인류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다는 사실은 간과했던 것이다. 로봇은 인간의 모든 일을 해주며, 전쟁까지 대신하게 된다. 결국 로봇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류는 로봇에게 죽임을 당한다.
“만국의 로봇들이여! 많은 인간들이 쓰러졌다. 공장을 손에 넣은 지금, 우리는 전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인류의 시대는 끝났다. 로봇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은 파시즘으로 물들었던 과거의 역사와 똑같다. 로봇들은 로봇 유니버설 건축담당 대표인 알뀌스뜨를 유일한 인간으로 살려둔다. 왜냐하면 번식능력이 없는 로봇은 로봇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몰랐기 때문이다. 알뀌스뜨 역시 로봇을 만들 수 없었다. 이로써 로봇 또한 인류처럼 멸망의 길이 멀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로봇이 나타난다. 헬레나와 쁘리무스란 남녀 로봇이다. 이들은 아름다움을 알고, 울 수 있다. 또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마지막 인간 알뀌스뜨는 이 둘을 향해 아담과 이브라 말하며,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라고 말한다. “
“생명은 사라지지 않을 거요! 생명은 사랑과 함께 다시 시작될 거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사막에 뿌리를 내리겠지! 그 생명들에게는 우리가 만들었던 모든 것, 마을과 공장, 예술, 철학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겠지.”
알뀌스뜨의 마지막 대사는 카렐 차페크가 이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한 핵심이다. 작가가 처했던 1920년대 상황은 암울했다. 그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고 현대전을 통해 대량학살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정치적 견해에 편승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성 회복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노동과 인간,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새삼 고민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