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와 대화하다
김규중 지음 / 사계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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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목처럼 정말 대화를 한다. 과학과 수학을 좋아하고 조금 엉뚱한데가 있는 명석이와 문학을 좋아하고 낭만적이며 똑부러진 은유, 두 학생이 시를 읽고 이야기 한다. 명석이와 은유는 의견이 달라 싸우기도 하는데, 정말 생생하다. 저자가 교사라 실제 수업 중에 나온 학생들의 대화를 참고했다는데 참말인가보다. 

책의 또다른 등장인물은 두 학생의 이야기를 마무리 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김샘이다. 김샘은 두 학생이 시 해석에 어려움을 겪을 때만 잠깐 도와준다. 전면에 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두 학생이 고민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준다. 김샘의 방식은 이 책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와도 같다. 기존의 시험답안 찍 듯 외우는 시 교육과 달리 스스로 이해하고 터득해 나가는 새로운 시 읽기 방식을 시도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게다가 이 책은 시 읽기를 3단계로 나누어 수준별 학습을 도입했다. 즉 영어나 수학처럼 학생들 수준에 맞게 시를 읽도록 만들었다. 1단계에선 중1수준으로 ‘오리 한 줄’, ‘빵집’, ‘이 바쁜 때 웬 설사’, ‘소를 웃긴 꽃’과 같이 쉽고 재밌는 시들을 배치했다. 시를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보인다. 2단계에는 중2~3 수준으로 ‘가난한 사랑 노래’, ‘귀뚜라미’, ‘이슬’처럼 시어의 의미를 밝히고, 표현을 배우는 본격적인 시 공부에 들어간다. 3단계는 ‘알수 없어요’, ‘꽃’, ‘바람의 말’, ‘지상의 방 한 칸’ 등 시어도 복잡해지고, 철학, 역사 같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시들이 나온다.    

내가 학생 시절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국어 성적이 더 나왔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 책은 시를 읽는 눈을 열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시어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려운 시를 읽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방법도 '보여 준다'. 즉 학생들의 대화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 읽는 법을 체득하게 된다. 

어쨌든 청소년들의 시 공부를 위해 큰 도움이 되는 책이 분명하지만, 수록된 시들이 그저 즐기며 읽기에도 참 좋았다. 교과서에서 봤던 오래된 근대시보다 현대시가 많아 요즘 정서에도 맞았다. 웃긴 시(‘이 바쁜 때 웬 설사’)도 있고, 과학적 상식(‘광합성’)을 요구하는 시도 있고, 짧지만 강렬한 시(‘그 꽃’)도 있었다.

청소년들만 읽기엔 아까운 책이란 말이다. 그만큼 구성도 잘 짜여 있고, 시들도 하나하나 정성들여 고른 티가 난다. 간혹 시 옆에 있는 삽화도 제법 운치 있게 그려졌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시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양의 ‘토막말’과 고은의 ‘그 꽃’을 추천하고 싶다.

 
토막말 

                                        정양   1997년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 놓고 간 말
썰 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 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 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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