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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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이란 제목에서 먼저 떠올린 것은 저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였다.
도킨스는 그의 저서 [눈먼 시계공]을 통해, 다윈 진화론에 바탕을 둔 주장을 했다.
그래서 이 책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같은 진화론을 소재로 한 소설로 예상했다.
헌데 첫장을 넘기는 순간 예상은 깨졌다.
 
소설은 기계와 인간이 뒤섞인 우울한 미래를 대담하게 그린 전형적인 SF 였다.
게다가 전문가(?)인 정재승의 공동집필 덕에 엄청난 과학적 지식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스티머스'라는 '피해자의 전전두엽에서 가장 최근 주입된 기억을 추출하여 영상으로 재생하는 장치'나 '뇌파작곡시스템', '악몽억제장치' 등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앞장을 다시 넘겨야했다.
하지만 그런 설명들이 익숙해지자 소설이 읽기 수월해지고 재미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기억은 마음에 남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진다. 세포의 변화가 곧 기억이다." 하고 말하는 부분은 현대 과학의 견해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300년간 과학자들의 실험실 안에서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긴 많은 일들이 소란스럽게 제시되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또는 "인간은 생존 본능을 가진 생체 기계다"는 소설 속 말도 <눈먼 시계공>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소설이 그리는 2049년 서울의 모습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이중으로 바뀌고,
남산타워 대신 '벌룬 우주선'이 떠있고, 강남은 첨단과 패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강북은 생태공원이 되었다.
무엇보다 건물주변에 거대한 인공안개와 벽이 된 폭포와 담이 된 시냇물은 서울을 물의 도시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발달한 테크놀로지로 몸을 기계로 대체해 수명을 연장하고 강한 육체를 만든다.
인간끼리의 스포츠는 로봇 격투인 배틀원으로 대체되며,
운전, 청소, 요리, 성적 서비스 심지어 배우들까지 기계를 통해 해결하는 세계는 놀라웠다.
김탁환의 세세한 묘사와 그걸 뒷받침해주는 정재승의 과학사적인 설명은 소설속 세계가 곧 다가올 미래같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첨단기술과 기계로 꾸며져 소설 속 미래 사회는 눈부시게 화려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병을 앓았다.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에 로봇과 동물에게 집착하고,
분노를 참지 못해 파트너 로봇을 때리고 부수고,
오늘날의 성형수술처럼 멀쩡한 몸을 각종 기계로 바꾸고 고치고,
어이없는 이유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고 부자는 더 사치스런 그런 사회였다.

소설은 오늘날 현실의 문제를 2049년 서울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뇌를 탈취해간 기묘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 구성과
표도르와 크로캅을 방물케하는 로봇 격투기는 소설의 흥미를 더해준다.
SF, 스릴러, 과학, 사회소설 모두를 충족하고 있는 [눈먼 시계공]은 꽤 읽을 만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소설 구성이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 하다. 

<인상 깊은 구절> 
"SF 소설가들은 닥쳐선 안 될 미래를 막기 위해 소설을 쓴다. 전설적인 연작 단편집 [화성연대기]를 남긴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설가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우울한 미래에 대한 20세기 SF 작가들의 기록은 21세기의 허리를 관통하는 오늘날 대부분 현실로 거듭났다. 로봇에 관한 예측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했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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