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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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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 등이 주관한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아이들의 글을 당시 시대상과 교차해서 담고 있다.

물론 ‘모범적’인 글들만 선별하여 상을 줬을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일본군 입대에 자원하고, 전사한 오빠의 죽음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조선과 일본인 아이 할 것 없이 천황 만세를 부르짖는 모습은 그 시대 ‘제국의 어린이들’을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언뜻 아이들이 쓴 글처럼 보이지만, 결국 시대가 주입한 글이었다. 제국주의가 아이들의 일상마저 전쟁 이데올로기로 바꿔 놓았다는 역사적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 아래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모범적이고 올바른 어린이가 되기 위하여 전쟁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마지막에 저자가 덧붙인 기록되지 못한 조선인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을 시큰하게 한다. 자신들의 일상과 황국 신민으로서의 충성을 다하는 글을 쓰는 것마저 결국 여건이 되어 취학을 할 수 있었고, 강제노동에 동원되지 않고 학교에서 글을 배운 아이들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탄광에서, 공장에서 강제동원되어 사라져간, 역사 속에 묻힌 어린이들. 기록되지 못한 아이들의 순진함, 아이들의 삶, 아이들의 죽음. 나는 제국에서 배제된 그 아이들의 일상마저도 뼈아프게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 그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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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트리플 28
김남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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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끌어안고 사소한 슬픔 속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기를, 헤치고 나아가기를.

🌿 김남숙 작가의 소설집 <파주>의 표제작 [파주]의 도시 ‘파주’는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배경이다. 소설 속 ‘나’는 평범해 보이지만 한때 누군가에게는 지옥과 같았던 남자친구 ‘정호’를 엷게 경멸하는 동시에 그에게 시시한 복수를 하러 나타난 군대 후임 ‘현철’에게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간다. 현철은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는 등 언뜻 보기에는 그 나이 또래 남자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를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작중 서술상, 아마도 군생활 동안 정호가 현철에게 그런 트라우마를 주었을 것이다. 정호는 다들 그 안에서는 그렇다며, 내가 도대체 뭘 얼마나 했길래 나에게 이러느냐며 억울해하고 어이없어한다. 반면 끝끝내 정호가 현철에게 가한 폭력의 실체는 그 명암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기억도 하지 못할 아주 평범한 폭력에 발밑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현철의 요구는 너무도 사소하고, 복수의 방식 또한 그렇지만, 정호는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몇 달을 노력하더니 나중엔 그냥 다 잊어버린 것처럼 산다. 모두 털어냈다는 듯. 처음부터 모르는 사이였던 것처럼.

🕊️ 크나큰 행복에도 이상할 정도로 무감한 마음은 티스푼만큼의 아주 작은 불행에도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소금자루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시대, 김남숙 작가의 작품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기를 권한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화자들이 평범한 폭력에 평범하게 몸서리치면서도 신물이 날 정도로 환한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은 작품들이 뜻하는 바를 명확하게 한다. 어쩌면 따끔한 조언이나 틀에 박힌 힐난의 말보다는 뻔한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다.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언제나 그렇다. 그래, 살아야지. 너와 나 손을 잡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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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 SF와 인류학이 함께 그리는 전복적 세계
정헌목.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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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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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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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평생 ‘남의 집’을 지었다. 5년제 건축공학과를 전공했고, 한때는 꿈도 많았을 아버지가 마냥 희망만을 좇기에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은 ‘건축’이라는 큰 틀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프리랜서로 설계 일을 하며 우리 남매는 집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건축 설계 도면에 익숙했고, 집안엔 늘 공학용 계산기가 두세 개쯤 있었다. 그뿐일까. 아버지는 현장에서 철근이 단단히 메꾸어지는지를 확인하고 철제 구조물 위에 올라가 인부들을 감독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렸다. 그러니 다시 말해서 아버지는 현장과 사무실의 사이에서 때로는 설계자로, 때로는 목수에 가까운 직책으로 일했던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현장 노동자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극찬할 만한 예쁜 건물을 생각해낼 여력도 없다. 단 한번도, 아버지는 당신이 건축가라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건축가의 사전적 정의가 어떻든지간에, 학위가 필요한 건축 일을 한다면 그건 곧 건축가나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아버지가 그간 설계도를 이리저리 만져가며 지어온 수많은 건축물들은 젊은 시절 건축업에 뛰어든 아버지의 커리어를 대변한다고, 말이다. 굳이 벽면과 기둥과 지붕을 예술적으로 꺾거나 에어컨 바람이 쏟아져내리는 책상에 고상하게 앉아 투시도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가. 아버지가 지은 수많은 아파트와 빌라, 사무실, 펜션들로 어렸던 나와 동생은 밥을 먹고 착실히 자라 성인이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이미 여러 방송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 건축 전문가로 출연하며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저서를 대학 졸업반 때 어느 인문학 교양 수업에서 접했다. (졸업반에 왜 교양 수업을 들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사실 지금도 인문학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냥 지루하고 막연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인문학과 건축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궤를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건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은 ’공간‘이라는 개념에서 더 확장하여 아예 건축이라는 개념과 세계의 유명 건축물 전체를 우리 삶에 빗대어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하기 위한 건축은 선사시대의 움집으로 족하다. 그러한 일차원적-평면적 접근이 아닌, 벽 하나도 허투루 세우지 않았던 설계자의 의도와 그들의 멀리 뻗어나간 인생관까지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유현준 교수의 분석력과, 건축이라는 개념에 대한 다정함 어린 시선이 엿보였다. 가히 건축공학과 인문학적 소양이 남다른 저자다웠고, 한편으론 저자의 높은 지성력이 부러워졌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선 빛이 난다. 과연 살아생전 가볼 일 있을까 싶은 가지각색 건물들과 시대를 빛낸 천재적인 건축가들의 향연 속에서 나는 어렴풋하게 내 아버지를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엔 과연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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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포르투갈 - 산티아고 순례길, 지금이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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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살면서 여행을 막연히 꿈꾸었던 순간이 많다. 이곳이 삶의 끝일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졌을 때, 너무 지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 너무도 착실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우리는 여행을 꿈꾼다. 눈 감으면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 세 곳을 못 대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마음 먹었을 때 곧장 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드물 것이다. 피치 못할 지갑 사정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직장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여행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비록 내가 직접 현지로 가서 경험해 보는 것은 아니더라도, 일반인인 그들이 연출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것들을 맞닥뜨리는 영상들은 일상에 파묻힌 우리에게 위안과 감동을 준다. 바야흐로 여행 유튜버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 작가는 약 예순의, 중년을 넘어서 초로에 접어든 장년기의 여성이며 ‘나로 존재하기 위해’ 포르투갈 순례길을 걷는다. 하루 만 보 걷기도 빠듯한데 걸너서 순례길 종주라니! 그것도 젊은 나이도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지 읽으면서도 감탄하게 되고, 동시에 내 발이 다 아픈 착각이 들었다. 살면서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는 순례길. 장년층 여성의 몸으로 혼자서도 척척 해외를 돌아다니고 낯선 타지에서 외국인 여행객들과 금세 친구가 되는 여행기를 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만의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로 떠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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