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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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게 된다.

내가 군대에 오게 된 것.

내가 살길을 고민해야하는 것.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써 고3이라는 이름으로 입시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던 것들.

이밖에 많은것들이 우리 인생에 어쩔 수 없음으로 다가온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읽은 책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인 황석영 선생님의 손님이다.

우리 민족에게 맑스주의와 기독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맑스주의로 인해 강력한 제국을 완성한 소련의 힘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비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련이 아니라도 사회주의 사상이 가져다주는 이론적이 완벽함. 지금의 내가 그 시대의 계급의 서러움에 시달려야만했던 운명으로 태어났다면 그 이론적 완벽함과 이상적 세계관에 매료되었을 것 이다. 여튼 우리가 원하지 않았건 원했건 반갑지 않았건 반가워건 우리는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세계의 흐름을 막을 만한 힘도 의지도 지식조차도 갖추어 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 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실천력이 민중을 뒤 흔들던 때이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은 유학을 지키려했다. 적어도 지배층에서는 자신의 권위와 당시의 행태를 정당화 시켜줄 유학을 끝까지 고수하려했다. 하지만 우리는 뱃길을 열고 들어오는 서구열강이 젓는 힘찬 노를 막을 힘이 없었다. 서구의 소위 말하는 신문물과 함께 신사상, 신세계를 알리고 열어줄 기독교의 책과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들이였다. 무지한 백성들이었다. 업악에 짓눌리는 것을 그냥 아버지가 물려준 유전자인 것 처럼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이였다. 파란눈의 사람들이 가르쳐주고 인도해준 하느님의 세계는 천국이였다. 가난한 자도 믿음만 있다면 현세는 아니라도 사후세계에서 만큼은 오늘날의 한을 풀수 있다고 기독교를 접한 조선의 백성들은 생각했다.

모두가 맑스주의를 동경하고 기독교를 사랑했다면 그들은 '귀한 손님'의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맑스주의는 미국을 선두로하는 자본주의에게, 기독교는 아직 나의 뼈속 깊은 곳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유교적 사상에게 '불청객'의 대우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황석영 선생님은 6.25전쟁이라는 우리민족의 뼈 아픈 기억을 통해 그 불청객들이 귀한 손님이 되고 마침내 주인이 되기위해서 우리가 치러야 했던 엄청난 댓가를 솔직하게 담대하게 표현해 놓았다. 누군가 그랬다. 황석영은 시대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정말 그의 소설에서는 아차하면 우리가 그냥 아픈 역사와 과거로 취부하고 넘겨 버릴 사실들을 재조명,재해석하는 그의 시대적 성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뿐만아니라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적인 특수 상황을 한국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었다고 본다. 소설의 구성을 우리민족의 전형 한풀이 놀이인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열두마당을 모태로 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맑스주의와 기독교는 우리에게 '불청객'이다. 그들이 우리의 땅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민족적 한국적 한이 산출되었다. 소설 손님은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한을 풀기위해 가장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한풀이 방식인 굿의 구성방식을 소설에 옮겨놓으면서 가장 민족적이고 한국적인 소설이된다. 거기다가 이북의 말투를 사용한 상황전개는 현실감을 극에 달하게 하고 눈으로 보여지는 것 보다 더한 생동감을 전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또 변했다. 우리에게는 많은 지식과 힘과 기술이 생겨났다. 지금도 우린 많은 '손님'을 맞이해야한다. 그 중 맑스주의와 기독교 같은 '불청객'은 반드시 존재한다. 아마 미국이 아닌가 싶다. 미국이 우리에게 반갑지 않지만 받아들여야할 손님이라면 난 즐기고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상투적이 표현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우린 미국이 원하는 장단에 신명나게 굿판 한번 벌려주고 당당하게 굿값을 받으면 된다. 그 다음에 뒤도 돌아보지않고 가면 그만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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