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아시스
김채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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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서울오아시스>, 2025
상실과 부재속, 어떤 깨어진 파편을 쥐고서도 걷고 걸으며 삶이라는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덟편의 단편을 묶으면서 작가는 이 소설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쓴 소설들이라고 썼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의 이기적이고 자폐적인 무언가가 작가 당신을 살게했다고. 살아갈 방법을 전혀 찾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안다고. 하지만 작가는 살아갈 방법이 필요한 사람이고, 그 방법이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도 싶다고 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고 싶다고.

그녀의 이 마음이 여덟편에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묶였다.
실제로 그의 소설속 화자들은, 삶에서 주어진 어떠한 상실, 공허함, 무언가 깨어진 파편을 손에 꼬옥 쥐어 피를 흘리면서도 한줄기의 빛을 밟아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만날 수 있는 사람만을 만나고, 잘 수 있는 만큼의 잠을 자기. 그리고 일어나 걷기.”(p86, <서울오아시스>)와 같은 것들을 하며.

“바깥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봐야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끔찍하겠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해.” 라는 말을 곱씹으며 “그래, 맞아……자연스럽게. 억지로 꾸지미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이 순리에 맞고 당연하게……”(p189, <외출>)

그러면서도 화자들은 자신의 내면 깊은곳의 자신의 무언가를 잃는 것이 자신이 아니게 될 까봐 두려워도 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나는 계단에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를 발로 밟으며 혼자 계단을 올랐습니다. 어째서인지 바깥의 풀냄새에 기가 죽어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걸었습니다. 좋은 날이었습니다. 바람도 적당하고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 있어 더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몸 안에 햇빛을 비출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날이 밝으면 내 몸 곳곳에 숨어 있는 어두운 기억들만이 나를 살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지금까지 밝고 환한 곳을 피해 다니며 나의 어두운 기억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는 정말이지 살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P197 <외출>)

도심 한가운속,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들 틈에, 한가지 깨어진 파편같은 삶의 조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보는 소설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 작가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각 존재 속 깊은 한켠에 가지고 있는 어떤 파편에 위로를 건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묻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도록 인과를 생각하고. 그런데 어째서 증명해야 하나 내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어째서 다른 이들과는 달리 증명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되물으면.”(p198, <외출>)서 살고 있으니까.

구원은 바깥에 있지 않고, 상실- 부재의 장소는 오히려 오아시스일 수 있고, 형벌 같은 삶에도 한 조각의 윤슬은 감춰져 있으므로.
어쩌면, 이 소설속 다른 존재의 모습들을 통해 나의 심연 속을 자연스레 바라보고 느끼게 되면서 알 수 없는 미묘한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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