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 내 영혼에 조용한 기쁨을 선사해준
이하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1장 나에 관하여

 

니체는 초인이 되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눈다.
낙타 - 사자 - 어린이
낙타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정신이다.
이러한 낙타의 정신을 니체는 "복종 속에서 자신을 즐겁게 만들고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는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로 설명한다. (p37)
즉, 의심 없이 실천하는 노예 정신을 말한다.
사자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었던 믿음, 신념, 가치, 도덕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자정신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이를 초인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는 '망각'의 상징이다. 망각을 통해서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을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사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니체의 초인의 개념은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실험, 시도, 도전은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향상심을 잃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칸트는 규칙적으로 산책을 했다.
아인슈타인은 규칙적으로 메모를 했다.
'규칙적으로'가 의미하는 것은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에 의해 사람이 완성된다."라고 말한다.
습관이라는 단 한 가지로 일반화하기에는 위험요소가 있지만 나로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장 사랑에 관하여
 

철학자 아드르노의 사랑에 대한 생각이다.

사랑에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p156)

한국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러셀이나 프롬의 사랑론도 '사랑의 윤리학'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p156)
이것은 '사랑의 형이상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도르노는 사랑과 사회의 관계, 사랑과 경제의 얽힘, 자본주의에서의 사랑의 양상과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p156)

위에 언급한 문장들은 부제목 '신화가 되버린 사랑' 내용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내가 이해한 바로, 낭만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이제 사랑에도 자본주의의 권력인 돈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환가치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는 사랑이 '종속적인 관계'가 된다.
이것을 '사랑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의미로 아도르노는 낭만적 사랑을 정의한다.
 아도르노에게 '낭만적 사랑'의 본질은 남성적 성적 욕구의 표현에 있다. 남성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이란 남성의 '육체적 충동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159)

아도르노는 종속적인 관계를 극복할, 사랑의 죽음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사랑의 조건과 사랑의 능력이다.
'차이를 지각하는 능력'
곧 '사랑의 조건'이다. 
동시에, '유사하지 않는 것에서 유사성을 지각'하는 것이 '사랑의 능력'이다.

아도르노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은 사랑의 대상을 동일화의 논리 속에서 강제하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주체로서 지각하며, 그 주체와 구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달려 있다. (p169)

3장 관계에 관하여

 

리스먼은 인간의 사회 성격을 세 분류로 분리한다.
전통 지향형, 내부 지향형, 외부 지향형(타인 지향형)

외부 지향형. 즉, 타인 지향형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회 구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타인 지향형은 "독백보다는 대화를 원하고, 고독보다는 사교활동을 즐기며,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하고, 개성보다는 동화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고립과 분리를 자연스럽게 두려워한다."고 책에서 말한다.

타인 지향형 성격의 소유자들은 오직 자신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을 받는다고 느낄 때 자존감을 획득한다. (p189)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구이다.
문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존감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에 있다.

이런 타인 지향형 성격에서 개성은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p191)
타인 지향형 인간에게 좋은 사람이란 '유쾌한 말씨, 공손한 태도와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언제 어디서나 협력이 가능한 사람, 격정적이고 불손한 태도가 없는 사람이다. (p191)

위에 언급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타인 지향형 인간일까?
자신만의 줏대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꼭 줏대가 있어야 타인 지향형 인간에서 벗어나가는 것일까?
과연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의하는 게 맞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좋은 사람이 줏대까지 있으면 타인 지향형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궁금점을 남긴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는 위에 언급한 일방적인 주장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리스먼의 이러한 주장은 정확성과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리스먼) 또한 인정한다. 

리스먼은 타인 지향형 인간의 대안으로 자율 지향형 인간을 내세운다.
자율 지향형 인간이란? 타인의 의식 속에서 벗어나 비판적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
'저것은 속물이야',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취미나 기호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p193)
한마디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자율 지향형 인간이 되는 것은 니체가 말하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p196)

4장 삶에 관하여

 

마지막인 [하이데거의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종교인에게 죽음은 삶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과 같은 종교적 차원이 아닌 순수 철학적 입장에서, 죽음을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것으로 본 철학자 있다. 바로 하이데거다. (p304)

죽음이란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p304)

하이데거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죽음을 향한 존재"


책을 읽으며 나의 방식대로 이해한 것을 적어봤다.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쉽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철학자가 생각하는 각 주제에 대한 원인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원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또는 억지스러운 사상들도 있었는데, 그런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라 해야 할까?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2장 사랑에 관하여'에서 아드로느의 주장과 '3장 관계에 관하여'에서 리스먼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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