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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책의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고 내가 내뱉은 첫마디.
"대체 이 작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산 거야?"
그만큼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삶과 소설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 두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오사무. 작가는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닐까. 동정심을 유발할 만한 약간의 과장과, 허세를 섞어서.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요조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들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뛰어난 미남인데다, 집은 부자이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높게 나올만큼 머리도 좋은 편이다. 그 속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은 우스운 행동을 일삼고 항시 웃는 얼굴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재주까지 있다. 하지만 그가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극도의 공포감은, 결국에 그를 궁지에 내몬다. 인간을 향한 공포감. 요조만큼 극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가지고 있다.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요조의 심정에 일부 동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요조가 반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일부러 철봉에 실패했다는 대목. 뜨끔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낯설은 얼굴들을 만나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는 엉뚱한 언행을 일삼았다. 사실 익살은 인간 관계에 매우 좋은 작용을 한다. 우스운 행동과 화내지 않음은 경계감을 없애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요조가 성공했던 것처럼, 나도 성공했다. 나는 반 전체 아이들과 원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요조처럼 처절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리 괴로운 심정도 아니었다. 조금 피곤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거짓된 익살과 과장된 미소는 깊은 사귐을 방해한다. 중1때의 나는 사귐의 폭이 넓었고, 미움을 받진 않았지만, 한번도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익살은 타인을 향한 경계심이요, 일정범위 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 몸 전체에 배리어를 두르는 것과 비슷하다. 소설 속에서 요조는 다케이치에게 들키고 만다. 그것은 분명 끔찍하고 처참한 기분일 것이다. 내 치부가 남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진듯한 수치심, 비참함. 요조는 공포심이 더 컸던 모양이지만, 내 경우엔 이쪽이 더 컸다.
어쨌든 약간은 공통점이 있기에 요조의 실패한 인생에 더욱 동정이 갔다. 가엾고 안타까웠다. 소설 속에서 요조는 여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는데, 확실히 이해가 갔다. 서툴기에 더욱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요조의 아기같은 순수함과 안타까운 처지가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했을 것이다. 연민.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요조가 한심하고 답답하지만,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의 수기는 슬펐다.
반면에 넙치나 호리키라는 '평범한 보통' 인간에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는데도, 거기에 상처입는 요조가 있기에 그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엔 나도 요조가 아닌, 넙치와 호리키에 속한 인간인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그들을 욕할 수 없었다. 요조의 마음은 제쳐놓고, <좋은 집안에 태어난 주제에 한심하게 헤실헤실 웃으며 여자들의 정부노릇과 음란한 만화를 그려 돈을 벌고 술과 담배 약에 취해 사는 구제불능의 젊은 만화가>만을 보자면, 역시나 사회에서 그리고 내가 쓰레기로 분류하는 쪽은 요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