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 변화와 혁신의 천 년 역사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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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하던 로마제국이 본토인 이탈리아의 향락주의로 인한 낭비와 이민족의 국경선 침입으로 인하여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격다가 혼란을 잠재운 황제가 나오고 그가 거대한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서 황제를 2명을 세우고 그 밑에 부제를 한명씩 세워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게 만들었던 일이 동로마 일명 비잔틴제국의 시초라고 할수가 있는데 4명의 황제가 전투를 통하여서 한명의 황제로 통합이 되고 그 통합을 이룩한 황제가 동로마의 시조인 콘스탄티누스이다.

 

그는 쇠락을 하고있던 수도 로마를 버리고 이민족의 침략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시아쪽을 중시를 하여서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게 된다.

후손의 시대로 오면서 다시 로마는 분열이 되고 서로마는 잦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을 하고 아시아쪽에 기반을 두고 있는 동로마만이 로마라는 이름을 승계한다.

 

기독교와 비잔틴의 관계 : 시조가 기독교의 도움으로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라를 통일을 이룩하였다고 전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그당시에는 기독교의 세력이 약하였고 전투의 상대방도 기독교에 호의를 보이는 황제였고 콘스탄티누스의 군대가 실전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승리를 이룩 하였고 기독교의 공인은 그 교리가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에게 유리한 교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야망에 불타던 황제가 국민들을 편안히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을 하였다고 본다.

 

세계적인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은 그 당시에는 일반 도시와 동일한 격을 가지고 있는 초기였는데 훈족의 침입을 방어 하기 위하여서 거대한 2중 성벽을 건설을 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70페이지

 

도시를 보호하는 대성벽이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방어벽으로 오랜 시간을 사용이 되었지만 실제로 도시를 보호하는 방어벽은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애향심과 용기가 주가 되었을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었도 그러한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쓸모가 없으면 시설도 망가지는 것처럼 비잔틴 제국도 1000년의 세월을 유지를 하였지만 그들 나름의 굴곡이 많은 시기를 보내었다.

 

,서로 나누어 지는 시기에는 누가 보아도 동쪽이 인구도 많고 기술수준도 높은 나라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부의 국가들이 흥성을 하고 그러한 세력과의 전투를 패하면서 나라는 갈수록 작아진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도 변하여 갔는데 처음에는 농민들이 주가 되는 보병에서 기병으로 다시 용병으로 변하여 간다.

그러한 이유로는 처음에는 적도 보병이 많고 상대적으로 훈련이 잘되어 있어서 적의 기마병도 보병이 상대를 하였지만 많은수의 군인들은 나라의 재력을 빨리 소모를 하므로 적은 수의 기병으로 변하고 기병으로 충원을 하던 농민들이 적어지자 나중에는 돈을 주고 이민족 용병으로 군대를 구성하게된다. 용병 들이린 돈을 바라고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국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중추를 보호하는 외곽부대로는 쓸모가 있지만 주력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정치 : 신정일치의 정치 제도 하에서는 종교와 관련이 되는 문제도 많이 발생을 하는데 황제들이 종교문제로 내분을 일으키어서 국력을 소모하는 경우도 나왔다.

경제 : ,중기에는 모직물과 발달이 된 기술로 많은 무역의 흑자를 이루었지만 잦은 전쟁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게 경제력을 빼았기어서 나라에 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잔틴제국에 대하여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비잔티움 연대기를 한번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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