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용광로 -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 570~1215 신의 용광로 1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슬람 문명이 유럽 문명에 끼친 영향과 그러한 이슬람 문명의 교두보의 역활을 해낸 히스파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슬람은 처음은 미미하였으나 나중은 공대 하였다고 할정도로 세력을 키우는데 그러한 세력 확장에는 주변의 상황이 많은 영향을 미치쳤다고 할수 있다.

 

초기의 이슬람은 마호메트를 따르는 일부의 사람들이 메카에서 그곳의 토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메디나로 자리를 옭기고 메디나에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의 여러가지 일들을 중재를 하는 지도자의 역활을 하면서 서서히 힘을 기르고 그들의 평등을 강조하는 교리 덕분에 하층계급의 지지를 받으면서 힘을 키우고 전투에서 싸우다가 죽으면 그들의 천국으로 들어갈수 있다는 성전을 외치는 교리로 인하여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는 군대를 만들고 그러한 세력을 바탕으로 메카와 전투를 벌여서 정복을 하는데 정복지의 주민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그대로 믿을수 있는 관용을 베풀면서 세력을 키운다.

 

당시의 주변 강대국인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계속된 전투로 인하여서 국력을 소진하고 빈사의 상태로 있었는데 전리품에 대한 욕구와 그들의 종교를 널리 알리기 위한 성전을 양 강대국의 빈사 상태를 이용하여서 전투를 하고 많은 승리를 이룩하고 그들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욱 강력한 군대와 문화를 이룩할수 있었다.

 

원래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던 이슬람이 선지자의 죽음후에 그의 아내 이던 아이샤의 권력욕으로 인한 내란을 겪으면서 원래의 전통적인 가부정적인 문화로 돌아가서 여인을 정치에는 참여 시키지 않는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슬람의 일부 다처제는 잦은 전쟁으로 말미암아서 과부의 증가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던 카라반 문화의 영향으로 전쟁을 위한 전사들을 양산할 목적으로 일부 다처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러한 문화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것 이라서 뭐라고 말을 할 것은 안된다고 생각을 한다.

 

선지자의 사후 장로들의 합의로 추대를 하던 지도자의 위치가 마호메트의 사위인 알리의 암살로 인하여서 한명의 지도자가 대를 이어서 자리를 차지하는 왕조로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서 크게 두갈래인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리게 되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서 잦은 분쟁을 겪게된다.

 

알리의 생존시 알리의 위치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이들은 시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우아미야일족으로 이들은 메카의 토착 세력들로서 이슬람 초기에는 선지자와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메카의 함락후 선지자를 따르게되는 일족으로 그 세력의 강성함이 매우 큰 힘을 발휘 하였는데 선지자의 사위인 알리와의 의견 충돌로 내란을 일으키고 전투를 하던중 알리의 암살로 지도자인 칼리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북아프리카에서 세력을 이루고 있던 이슬람 세력이 바다 건너의 히스파니아로 이동을 하게 된것은 그들의 정찰대를 두려워하는 그곳의 사람들과 당시 내분분열을 지속하고 있던 히스파니아의 세력들 때문에 전리품을 원하던 이슬람 세력이 침범을 하게된다.

초기의 이슬람 세력의 강성함을 겁낸 지배층이 성을 버리고 도주를 하는등 국내의 혼란으로 인하여서 손쉬운 승리를 거둔 이슬람 세력은 도시의 관리를 당시 지배세력에게 천대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맞기므로써 여러 민족이 조화를 이루고 사는 사회의 토대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

 

당시의 칼리프는 위독한 상태여서 후계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히스파니아 보다는 동로마의 콘스타티노플에 대한 전투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히스파니아의 전투부대를 모국으로 불러 들이지만 그들의 퇴각 거부로 후계자와 히스파니아 총독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칼리프의 사후에 히스파니아 총독의 퇴락이 이루어 지고 히스파니아는 시야에서 멀어 지면서 유럽의 프랑크족들이 사태에 대비할수 있는 힘을 기르는 기회가 된다.

 

힘을 기른 프랑크족들은 그들의 왕인 샤를마뉴의 인도아래 스페인의 아랍세력을 공격하는데 공격은 승리를 거두고 카톨릭 유럽을 형성하는데 성공을 한다.

당시의 성공은 아랍 이슬람 세력의 분열로 인하여서 그들이 힘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용한 것으로 분석이 되고 있다.

 

저자는 당시의 이슬람은 문명을 주도하는 입장이고 상업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신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던 유럽이 이슬람의 치하로 변경이 되었다면 400년 정도는 앞서는 르네상스를 받아 들여서 문명의 개화가 이루어 졌을 것으로 예상을 한다.

 

그동안 이슬람을 이끌어오던 우마이야왕조가 쓰러지고 새로운 아바스 왕조가 일어 났는데 이러한 아바스 왕조의 박해를 피해서 스페인으로 건너온 우마이야왕가의 왕자인 아브드 알 라이만이 그동안의 총독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왕조를 건립하여서 스페인의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된다.

 

유럽쪽의 샤를 마뉴는 그동안 왕국의 고민거리이던 북쪽의 색슨족을 처리하려고 하였는데 색슨족은 카톨릭이 아닌 그들의 민속종교를 믿고 있어서 피가 흘러 넘치는 광신적인 종교 전쟁이 시작 되었다 이러한 전쟁은 많은 인명 피해를 동반하고 30년동안 이어 졌는데 그러한 나라의 상태로 인하여서 오직 전쟁을 하고 전리품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만둘어서 샤를의 왕국은 그의 사후 곧바로 분열의 길을 걷게 된다.

 

스페인은 강력한 왕을 필두로 하여서 서로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융합을 꾀하고 아랍의 물품을 가지고 무역을 하는등 많은 사회 발전을 이루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전쟁을 싫어하고 안정된 생활을 선호 하여서 유럽과는 다르게 군대의 구성원이 용병으로 교체가 되기 시작한다.

 

당시의 유럽은 카톨릭의 체계를 모든 시민들이 받아들인것이 아니고 일부 종족은 이단으로 치부하는 아리우스파를 받아들이고 일부는 토템 신앙을 유지 하는등 사상의 통일이 이루어 지지를 않아서 사상의 통일과 새로이 유입이 되는 바이킹등의 외세 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군사력이 중요한 사항이 되면서 문화의 원천인 그리스 문화를 잊어 버리고 오직 종교와 살육만이 있는 후진족인 문화를 형성 하게되었다.

 

그와는 반대로 이슬람은 초기단계의 문화라서 다른 훌륭한 것들을 받아 들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원래 자신들이 하던일인 대상 문화를 발전 시키어서 상업을 장려 하므로서 문화를 발전 시킬수가 있었다.

 

안정적이던 스페인의 이슬람 정권은 나약한 지도자가 나오면서 권력을 신하들에게 뻬았기고 고질적인 문제이던 반란으로 인하여서 여러 소국으로 나누어 진다. 초기에는 카톨릭을 믿는 북부의 왕국들과 전쟁을 벌이다가도 서로 협력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종교의 힘이 강력 해지면서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 하지않는 종교전쟁으로 흐러 가게 된다.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던 도시들을 점령 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 들이게되고 그러한 문화를 바탕으로 유럽의 철학과 수학,천문학이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인정을 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였보이는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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