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죄수 - 자오쯔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최후의 비밀 회고록
자오쯔양.바오푸 지음, 장윤미.이종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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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천안문 사태로 잘 알려져 있는 중국의 6.4 텐안먼 민주화 사태의 주역인 자오즈양이 녹음 한것을 책으로 만들은 것인데 자오즈양은 덩샤오핑의 무력 진압을 막다가 실각을 하여서 16년 동안 연금 상태로 재내다가 2005년 별세를 하였는데 죽기전에 6.4 운동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로 녹음을 시작 하여서 그 녹음 테이프를 가지고 정리를 하여서 책으로 나온 것이 국가의 죄수이다 .

 

이책은 크게 두부분 으로 나누어 지는데 처음 부분은 6.4 사태가 일어난 배경과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자오즈양이 행한일과 다른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무력 진압을 한 배경을 설명하고 연금 상태에서의 일을 논한다.

 

두번째 부분은 자오즈양이 중국 경제를 발전 시키기 위해서 행한 일들과 6.4 운동의 배경이 된 당시의 당서기인 후야오방의 실각과 그가 한일을 배경으로 설명이 들어간다.

 

현재 우리는 한국보다 더욱 경제적으로는 민주화가 된 중국을 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떠도는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 소개한다 " 중국이 공산주의인것과 한국이 민주주의인것은 세셰의 불가사의 "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각 국가의 국민들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 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면 본 내용으로 들어 가기로 하겠다.

 

6.4운동의 배경은 실각한 지도자인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계기로 북경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중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와 당의 경직성을 성토 하는 자리가 마련이 되었는데 이러한 사태가 진정 국면을 나타내는 시기에 신문에 덩샤오핑의 사설이 실리면서 식어가던 열기가 더욱 불타오르게 된다.

 

당시 북한을 방문중이던 자오즈양은 학생분규 사태를 보고 받고 중국으로 귀국후 일을 처리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리펑등 반대 세력이 분규 사태를 이용하여 당에 대한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 무력을 동원한 진압을 준비하고 이러한 방식을 덩샤오핑의 승인으로 계획을 하는데 귀국한 자오즈양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부패척결과 자유를 더욱 증진하자는 의견을 제시 하면서 당 원로 세력들의 공격을 받고 실각을 하는데 실각후 외국의 눈 때문에 자오즈양의 자유는 억압되고 외부인과의 면담도 제한을 받는 생활을 죽을때 까지 받게된다.

 

자오즈양은 이러한 처사가 당내 규약을 어기는 처사라고 당의 고위직에게 편지를 쓰고 호소를 하지만 당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자오즈양의 편지를 묵살하고 자유를 빼긴 생활은 계속 된다.

 

2장 자오즈양이 이룩한 중국 경제 발전과 후야오방과의 관계

 

당시의 중국은 마오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으로 빈사의 상태에 있었는데 그러한 빈사의 상태를 개선 하는 방법으로 수출을 통한 부의 확충을 꾀 한다.

 

당시의 상황은 자력 갱생을 강조 하는 분위기 이여서 식량 생산에 적합 하지않은 지역도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생산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원료를 가지고 생산을 하는 것도 자국내에서 함으로 서부의 원자재를 연안으로 가지고 오는데 운송비가 더욱 들어가는 상황 이었다.

 

경제는 자오즈양이 정치는 후야오방이 맡아서 하는 구조로 발전을 도모 하였는데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교조적인 원로들은 덩샤오핑이 막아서 자오즈양의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 할수 있었다.

 

자오의 방식은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을 하여서 고급인력이 있는 연안 지역에서 가공을 하여서 수출을 통한 외화 벌이를 이야기 하였는데 이 방식을 사용 하면 자본을 축척 하여서 내륙의 발전도 천천히 도모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 방식은 미국이 일본에 한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한 경제여건 에서는 임금이 싼 지역을 찾아가는 제조업의 방식을 파악 하여서 동남아로 진출하던 기업들을 중국으로 불러올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농촌 지역은 각 지역에 맞는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 하여서 농가 수입을 올리는 방법을 활용 하여서 국내 상황을 안정 시키었다.

 

자오즈양은 개혁 개방을 지휘 하면서 그에 반대를 하는 당 안밖의 원로와 당원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그이유는 자오즈양이 자유주의를 신봉 한다는 것과 시장경제를 자유롭게 풀어 주어서 경쟁을 유발 하여서 부패 문제를 발생 시킨다는 의견 이었는데 이러한 의견에도 자오즈양은 자신이 생각하는 인민을 위하는 길은 소련식의 계획 경제가 아닌 자유경쟁 시장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 육성 하고 교조주의적인 사람들을 외곽으로 보내는 행동을 하여서 실권을 가지고 있던 당의 원로 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실각을 한 것으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오즈양의 실각 후에도 덩샤오핑은 꾸준히 개혁 개방을 지지 하고 연안을 시찰 하면서 개혁 개방에 힘을 불어 넣어 주어서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한다.

 

사람은 미워도 그의 정책이 훌륭한것이면 이어 간다는 정신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제목인 국가의 죄수는 국가 정첵에는 죄수이고 민족에게는 영웅이고 가족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었던 자오즈양의 처지를 잘 나타 낸다고 생각을 한다. 그가 당시 상황에서 당의 정책을 따라 갔다면 자오즈양은 권력을 공고히 하여서 자손들의 부귀영화가 이루어 졌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자신의 신념을 지키므로써 가족의 고난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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