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의 심리학 - 화가들의 숨겨진 페르소나를 심리학으로 읽어 내다
윤현희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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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의 심리학

화가들의 숨겨진 페르소나를

심리학으로 읽어 내다.


화가들은 왜 자화상을 그릴까?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정체성을 선언하거나,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이거나, 내적 전쟁을 기록하는 일이다. 우리는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을 보며 나의 자화상은 어떠한지 돌아볼 수 있다. 어떤 화가의 자화상이 유독 나에게 인상 깊다면, 나는 현재 그 화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표식일 것이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젤 앞에 붓을 들고 서 있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화상부터, 군중 속에 스리슬쩍 자신의 모습을 끼워 넣은 자화상,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심지어는 거꾸로 매달려 도살된 소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도 있다.

<자화상의 심리학>책은 이토록 다양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면밀히 뜯어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지식과 역사적 사건들과 작품을 그린 화가들의 내면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심리 이론들이 더해져 미술작품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미술책을 꽤 읽어온 나에게도 이 책은 조금 난이도가 있는 책이었다. 책에는 16명의 화가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12명 정도는 다른 책들에서 접해봤고 나머지 4명의 화가들은 새로웠다.



네가 날 그릴래? 내가 그릴까?



이 책은 <위풍당당한 자아>, <성스러운 긍정의 자아>, <고통받는 내면의 자아>.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눈 후 각 테마에 어울리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안귀솔라가 그린 위 작품은 캔버스 속에 안귀솔라가 있고, 스승인 베르나르디노 캄피가 그녀를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스승인 베르나르디노 캄피이지만, 이 그림을 딱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안귀솔라 쪽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승보다 높고 크게 그림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암시하고 있다. 여성 화가의 대두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피해가는 영리한 전략을 선보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소개한 그림과는 대조적인 그림이 바로 위 그림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위 그림은 작업에 몰입하는 여성 화가 젠틸레스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젠틸레스키하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작품에 얽힌 불행했던 그녀의 과거사 이야기가 필수교과 수업처럼 따라왔었다.

그런데 그녀를 그림을 통해 불행했던 사건을 극복한 화가라는 스토리로만 기억하기엔 그녀의 업적이 남성 화가 못지않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바로크 시대 가장 성공한 화가, 역사화를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 피렌체의 예술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젠틸레스키. 그런 위대한 업적이 있어서일까. 여성성이 강조된 옷을 입고 있음에도, 표정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당당함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방탕한 탕아의 최후





자화상하면 떠오르는 화가 렘브란트. 젊은 날 부와 명예, 그리고 행복한 결혼을 성취한 화가 렘브란트의 위 두 작품도 비교하며 감상해 보자.

왼쪽에 술잔을 높이 든 남자와 그 뒤의 여자는 각각 렘브란트와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라고 할 수 있다. 트로니(tronie)라고 해서 실제 인물이 아닌 화가가 창조한 가상인물의 초상을 보여주는데, 가상의 인물이지만 렘브란트의 삶을 반영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말년은 젊은 시절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오른쪽 그림 <돌아온 탕아>를 통해 그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램브란트가 자신을 냉철하게 응시하며 자화상을 그리던 시간은, 명예가 퇴락하고 젊음의 생기가 사라져 가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감싸 안는 로저스식 자기치료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자화상은 화가의 그 당시 심리상태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심리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창구로써 기능하였단 생각이 든다.



미술과 심리의 만남





어떤 화가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과시했다. 또 다른 화가는 그림을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도구로 사용했고, 화가라는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을 남들 앞에 보이기 위해 자화상을 그린 화가도 있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자화상은 그림 너머 화가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쿠르베의 자화상을 볼 때 그의 자신만만함을 닮고 싶었고, 무력감과 허무감에 휩싸인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볼 때는 연민의 감정에 휩싸였다.

노랑과 파랑을 주로 사용한 반 고흐에게서 조증과 우울증을 읽어내는가 하면, 살인을 저지른 화가 카라바조에게선 적대적 귀인 편향성을 읽어낸다. 미술과 심리학으로 읽어내는 화가들의 이야기는 때때로 현학적으로 들렸지만, 그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미술작품에 담긴 화가들의 자아를 탐구하는 책 <자화상의 심리학>. 화가들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미술과 심리학을 이렇게 엮은 것도 대단하지만,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문장력. '고독 속에서 예술을 쟁기질하며', '자연이라는 해독제와 그림이라는 치료제' 등 책에 적힌 몇몇 문장들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을 자아냈다.

아름다운 화가들의 그림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멋진 문장들이 이 책을 더 빛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미술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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