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와 규호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에게 팔꿈치로 입술을 가격당했던

내 앞에 찾아온 짧은 머리에 쌍커풀이 없는 긴 눈을 가진 규호.

뜨거운 내 입술에 닿았던 피지워터를 기억해

나는 단지 미쳐있었을 뿐이라고, 너무 많이 마셔버린 술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만

아니, 나는 너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던게 아닐까 그러니 단숨에 네게 키스해버린걸지도

'제발 잊어주세요' 다신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네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세 번 만나기 전까지는 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너의 철칙이 귀엽게 느껴진다면

그건 콩깍지가 씌인걸까

인천에 사는 제주도에서 온 89년생 규호 당황하면 제주도 사투리를 마구 쓰던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큰 맘 먹고 핸드드릴을 사 내 방에 커튼을 달아주던

잠든 내가 눈을 찌푸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내게는 '카일리'가 있다고. 망할 놈의 공무원새끼가 나에게 옮긴 카일리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버렸다고. 그러니 "이런 내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가도 돼.

생각 더 하고 연락줘"라고 말했을 때 앞에서 마치 네가 나인마냥 펑펑 울고 있던 규호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우는거니 너는

언젠가 네가 나에게 말했지

-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나도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어.

결국 우리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여느 커플들처럼 자주 싸우고 잠깐은 헤어지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서로를 찾게 되었지

너와 나 우리 둘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면 우리는 처음의 그 날들처럼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규호 너와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는데

그건 내 자만이었을까

카일리가 있는 내게, 너를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랑할 수 있었던건

큰 선물이었어 규호야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완벽히 끝날 때가 되어간다는 의미겠지.'

-대도시의 사랑법 72p-

기다려줄거냐는 물음에, 우리 이제 헤어지냐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해

사실은 네가 엄청 필요하다는 말을 삼키고

다시 내가 가장 잘 아는 대도시로 돌아갈 수 밖에 없던 나를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으면서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본 적 있다면

어! 이거 ! 하고 발견했을 부분이 있었는데 작가님들이 자신의 작품들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어놓고 조금씩 출연시키는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웠고

그런 점을 찾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소설집 안에서도 '재희'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나오고 대도시의 사랑법

단편 안에서도 재희라는 인물이 나오는걸 봐서는 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사소한 연관성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보다 훨씬 좋아서

박상영 작가가 어떤 문장을 쓰는지,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면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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