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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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피아노는 스스로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져 있다. 아니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고 끊임없는 질문만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같은 단어의 반복이나 비슷한 말을 조금의 변형만 줘서 사용하는 방식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해하기 어렵다' 였다.

어떤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딘가로 가는듯 하면서도 한참을 걷다보면 다시

처음 걷기 시작했던 그 자리에 내가 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여기에서는 자꾸만 길을 잃는다. 길을 따라가면 길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래. 죽음, 죽음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 불가능한 상태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므로. 그 가능한 모든 것이 불가능으로 가능한 이곳에 유일하게 놓여 있지 않은 것. 내가 결코 그것 자체가 될 수 없는 것. 지금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

자동 피아노 (16p) / 천희란

이 소설 속의 화자는 죽음에 대한 수많은 고뇌에 빠져있다. 한 때 죽음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야만 했던 날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 화자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는 물음은 끝이 없고, 나는 어째서 살아있는가.

죽음은 무엇인가로 귀결되고 만다.

죽음은 대체 뭘까. 죽음이란걸 쉽게 입에 올려서 되는걸까. 천희란 작가는 자동 피아노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죽음을 이야기하기란 언제나 어렵다. 도처에 존재하며 불시에 찾아오는 죽음. 나에게 항상 죽음은 두려움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어쩌면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탈출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동 피아노의 화자는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면서도 정말 죽고싶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나를 살려주세요" 라며 애원하는 것처럼 들린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 또한 언젠가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상상해봤고 죽음이 최후의 수단이겠거니 생각한 적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와 당신들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슬픔을 바라지 않는 나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당신이 겪고 있을 아픔이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아픔이라도. 나는 어리고 어리석고 당신은 섬세하고 여려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다가와 우리의 간극이 생기더라도. 그래도 조금 더 당신을 잡아두고 싶다고. 죽음이 끝내 당신이 선택한 도피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소설을 쓴 천희란 작가의 편지처럼 말이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끝내 어떤 결정은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을지라도.

나는 간절하게,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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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수
이현 지음, 김소희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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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수'에서는 연년생 남매가 우리나라의 전설과 얽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채 태어난 인물로 등장한다. 동네 영어 학원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남동생 형수를 누나 형은이 구해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나 형은이 못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수수깡 부러트리듯 가볍게 분질러 가루로 만들어버리고선 에어컨 실외기를 뛰어넘어 옥상으로 올라가는 놀라운 광경을 눈으로 목격해버린 형수는 형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형은은 형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우리는 열세 번째로 같은 생을 살고 있어. 그것도 남매로. 가장 오래된 기억은 통일 신라 때야. 고려 때의 기억도 있어.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였지. 그땐 두 살 터울이었어. 네가 오빠, 내가 여동생. 그때도 이번처럼 만력근을 타고났었어. 다른 생에서는 축지법, 운우술, 독심술, 천리안, 물통법······. 아무튼 우리는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어. 최소한 열세 번의 생에서. "전설의 고수, 71p

은의 말을 들은 형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누나가 드디어 "돌았구나" 라고.

사람이 미치지 않은 이상 저렇게 구체적으로 헛소리를 할 리가 없다.

형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돌았거나

-사이보그이거나

-아이언맨 수트를 입었거나

-외계인

이 네 가지 이론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형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자꾸만 전생이 기억나지 않냐, 어떤 꿈을 꾼 적이 없느냐고 묻는 형은의 말에 혹시 정말 누나의 말이 진실이 아닐까 의문을 가진다. 형수는 그러다 어떤 꿈을 꾸게 되고, 이 꿈을 실마리로 삼아 전생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경주로 떠난다. 

 

 

시대가 바뀌면서 동화에 나타나는 내용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설의 고수를 읽으면서 체감했다. '스마트폰, 몰래카메라(불법 촬영) , 아이언맨' 과 같은 소재들을 보며 동화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서 달라지고 있구나  내가 초등학생이던 10여 년 전과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화책에서 불법 촬영을 다뤘다는 점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적지는 못하겠지만 요즘 시대에 중요하게 대두되는 사회적 문제를 동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법 촬영은 범죄입니다...) 아무튼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작가님이 동화가 아이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력을 잘 고려하여 작품을 집필하신 것 같아 좋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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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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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님의 '이제야 언니에게'는 문학3이라는 웹진에서 '이제야 누나에게'라는 이름으로 2017년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새롭게 탄생시킨 작품이다.그 작품을 올해 2월에 처음 읽고 언제쯤 이 소설을 책으로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7개월만에 새 내용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야 누나에게 라는 작품이 제목만 조금 달리하여 책으로 출간된 줄 알았으나 '이제야 누나에게'에서는 승호와 제야의 편지 형식으로 글이 진행되었다면 '이제야 언니에게'에선 제야의 일기 형식으로 글이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서술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했고

이전에 이제야 누나에게는 짧게 연재가 되어서 제야의 내밀한 심리를 엿보기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제야 언니에게'는 책으로 출간되면서 앞뒤 상황의 부가적인 추가, 그리고 제야의 내면심리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네 불행은 네 탓이라는 시선. 그 일이 일어나고 내가 배운 시선들이지. 배우고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든 시선들. 나에게 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고 때로는 무참한 방관자야.

그러니까 제니야,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던 나로, 온전한 나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편에 서서,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이제야 언니에게 224p-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말이 이 페이지에 제일 함축적으로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을 세상의 모든 '이제야'가 자신의 불행을 (이걸 불행. 사전적 의미로 행복하지 아니한 일이라고 제3자가 쉽게 말하는 것도 실례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피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모든 범죄의 피해자는 온전히 화살의 방향을 가해자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내가 감히 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을까. 감히 이 글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었다.

'이제야 언니에게' 작품을 쓴 작가님마저도 이 글의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데 한낱 책을 읽는 사람에 불과한 내가 제니와 승호, 그리고 제야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깨달은 것들은 무수히 많았는데, 내가 제야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모종의 2차가해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단순한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그랬다면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뉘우쳐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과 같은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너는 피해자야 단정지어 판단하거나 혹은 피해 사실을 왜곡하여 그 사람을 틀에 가둬버림으로써 무너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세상에는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거겠지...?!

어느 것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세계의 모든 이제야들은 자기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그걸 사람들이 지켜줄 의무와 권리가 동시에 작용한다는 것.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가장 의미 있는 생각거리들이었다.

이 책이 좋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단순히 내용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작가님이 사건을 풀어내고, 그 사건의 피해자이자 글의 주인공인 제야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입은 상처에 대해 위안과 위로, 그리고 상처를 극복할 힘을 어느 정도 실어준 점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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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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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규호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에게 팔꿈치로 입술을 가격당했던

내 앞에 찾아온 짧은 머리에 쌍커풀이 없는 긴 눈을 가진 규호.

뜨거운 내 입술에 닿았던 피지워터를 기억해

나는 단지 미쳐있었을 뿐이라고, 너무 많이 마셔버린 술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만

아니, 나는 너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던게 아닐까 그러니 단숨에 네게 키스해버린걸지도

'제발 잊어주세요' 다신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네가 제 발로 나를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세 번 만나기 전까지는 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너의 철칙이 귀엽게 느껴진다면

그건 콩깍지가 씌인걸까

인천에 사는 제주도에서 온 89년생 규호 당황하면 제주도 사투리를 마구 쓰던

손님에게 받은 팁으로 큰 맘 먹고 핸드드릴을 사 내 방에 커튼을 달아주던

잠든 내가 눈을 찌푸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내게는 '카일리'가 있다고. 망할 놈의 공무원새끼가 나에게 옮긴 카일리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버렸다고. 그러니 "이런 내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가도 돼.

생각 더 하고 연락줘"라고 말했을 때 앞에서 마치 네가 나인마냥 펑펑 울고 있던 규호야

네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우는거니 너는

언젠가 네가 나에게 말했지

-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나도 그래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어.

결국 우리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여느 커플들처럼 자주 싸우고 잠깐은 헤어지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서로를 찾게 되었지

너와 나 우리 둘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바뀌면 우리는 처음의 그 날들처럼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규호 너와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는데

그건 내 자만이었을까

카일리가 있는 내게, 너를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랑할 수 있었던건

큰 선물이었어 규호야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완벽히 끝날 때가 되어간다는 의미겠지.'

-대도시의 사랑법 72p-

기다려줄거냐는 물음에, 우리 이제 헤어지냐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나를 용서해

사실은 네가 엄청 필요하다는 말을 삼키고

다시 내가 가장 잘 아는 대도시로 돌아갈 수 밖에 없던 나를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으면서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본 적 있다면

어! 이거 ! 하고 발견했을 부분이 있었는데 작가님들이 자신의 작품들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어놓고 조금씩 출연시키는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웠고

그런 점을 찾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소설집 안에서도 '재희'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나오고 대도시의 사랑법

단편 안에서도 재희라는 인물이 나오는걸 봐서는 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사소한 연관성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보다 훨씬 좋아서

박상영 작가가 어떤 문장을 쓰는지,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다면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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