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이훈구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도대체 누가 살인자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이 책에 씌어진 대로 도저히 살인범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가녀린 몸매에 맑은 얼굴을 한 이은석이 죽인 것인가? 아니면, 알게 모르게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 부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도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 은석의 몸을 빌어 그처럼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인가? 도대체 누가 살인자인가?

넘겨진 책장이 넘겨야할 책장보다 많아 질 즈음 나는 또 한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강O와 황여사가 죽임을 당하기 전, 그보다 훨씬 전부터 죽어가고 있었던 사람. 망치를 들고 방문을 나섰던 2000년 5월 21일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수차례 끔찍한 살인을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저지르고 있었던 사람. 그들을 죽였지만 그들로 인해 이미 그 자신도 죽어가고 있었던 사람. 그는 이은석이었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당방위'라는 말이 있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가 바로 '정당방위'이다. 자신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는 부모에 대한 정당한 방위로 은석은 망치를 휘두르지 않았을까? 그대로 두고보면 내가 죽게 생긴 판국이라 더는 물러설 수 없어 망치를 휘두른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살인은 이은석이 아닌 그의 부모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그리워했으나 사랑을 몰랐던 그리고 사랑을 알았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틀렸던 은석의 부모는 우리가 대학 교정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순진하고 앳된 모습의 은석을 살인자로 내몰았다. 그 아픔, 그 고통이 망치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게끔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이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에서 사랑 받지 못하면 세상 어느 곳에서 자신이 사랑 받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나는 은석에게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이 너무슬펐다. 그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비밀일기에도 털어놓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슬프다고, 아프다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비밀일기장에도 그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의 '나'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신을 형편없는 놈팽이, 멍청이, 비굴한 놈, 겁쟁이로 몰아세우다가 그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 욕해야만 하는가?' 그는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이므로 아무도 그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학을 하는 그 순간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지 않는 다는 사실에 '내가 정말이지 형편없는 인간이므로, 멍청한 겁쟁이에 비굴한 인간이므로 그럴 것이다'라는 너무나도 서글픈 이유를 갖다 붙이는 그 순간에 어쩌면 가장 사랑과 이해가,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지나친 학대, 사랑 없는 부부관계가 위태롭게 지켜내고 있는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끝'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누군가 은석의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그는 결코 망치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사랑으로 자신을 아프고 고통스럽게 하는 그들을 오히려 어루만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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