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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메모리즈
심승현 글, 그림 / 홍익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바흐를 어지간히 좋아해 꼬박 몇 달간 모은 돈으로 스피커 한 조를 산 청년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스피커라 할 지라도 나이든 그의 청력을 되살릴 순 없다. 바흐를 완전히 느낄 수 없는 청년은 상심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소리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그의 귀로는 섬세한 음을 다 잡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건 어린아이들 뿐.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레고 박스며 태권V에 정신이 팔려 음악 듣는 것을 어지간히 싫어했던 어린 날의 그는 아주 섬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던 황금 같은 시기를 그렇게 다음으로 미뤄온 것이다.
'어렸을 땐 좋은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지만 듣기 싫어하고. 어른이 되면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데도 다 들을 수 없다.-파페포포 메모리즈 중-'
작가 심승현은 '미룸증', '조급증' 등 갖은 중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을 가진- '파페포포 메모리즈'란 책을 선물한다. 이 책 속에는 서툴지만 예쁜 사랑을 만들어 가는 맑은 영혼의 파페와 포포가 살고있다. 작가 심승현은 파페와 포포를 통해 사랑의 진정한 가치라든가 가정이란 울타리의 소중함, 친구의 의미 등을 깔끔하면서 아기자기한 그림과 100% 농축된 짤막한 글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 '파페와 포포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막 끓여낸 코코아가 주는 뜨거운 감촉! 아마도 행복이겠죠?'라고 말하겠다. 실제로 <파페=심승현>이 듯이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는 '파페=김00', '포포=이00', '파페포포=김,이커플'이라는 식으로 책 속의 파페와 포포를 자신의 모습과 끊임없이 겹쳐 보았을 것이다.
나 자신은 파페포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파페포포와 같은 모습을 한 나를 만나게 됐다면 그만한 수확도 없으리라. 이미 기억의 저편에 잊혀진 줄 알았던 내가 파페포포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슴의 밑둥에서부터 번져오는 뜨거움이란! 그렇다. 분명 행복이 주는 뜨거움일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 책 속에서 객관성이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가장 주관적인 글이 가장 객관적인 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글쓴이가 표현한 지극히 주관적인 사상 혹은 감성이 독자들로부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할 때, 그 글은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자들이 하나같이 뜨거움과 위안이라는 선물을 챙겨 가는 '파페포포 메모리즈'야말로 '객관적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객관적'이라는 힘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찌든 현대인의 가슴에 쉽사리 식지 않을 코코아의 뜨거움을 선물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지금 혹은 언젠가 내 옆에서 이 책을 읽거나 읽고 있을 그 사람이 심승현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항상 같은 편을 걷는 사람. 사람이건, 트럭이건, '우리'를 가르려는 무엇의 방해공작에도 잡은 손놓지 않고 함께 같은 편을 갈 수 있는 그런 사람. 더운 날, 축구하는 그 사람에게 차가운 음료수를 건내기위해 땡볕에 앉아 덩달아 땀 흘리는, 가게 아주머니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음료수를 찬 걸로 바꿔 가는 내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30분이면 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주녀석을 위해 아껴뒀던 양갱을 조심스레 꺼내놓는 것처럼, 아껴뒀다가 하루에 몇 분씩 꺼내보고 싶다. 순서대로 읽고 싶은 책도 아니다. 우연히 한번 펼쳐 본 페이지에서 파페와 포포를 만나고 싶다. 설령 이미 본 페이지를 다시 펼쳤더라도 그 이야기는 새롭게 다가와 새로운 감상에 젖게 하고 새로운 감동을 줄 것이다. '5분의 독서가 주는 여운은 무한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나는 하루 5분씩, 그것이 주는 무한한 여운에 유감없이 심취해 하루를 값지게 시작하고 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