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 -상 - 2월혁명의 발발과 이중권력의 수립
레온 트로츠키 지음, 최규진 옮김 / 풀무질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올해도 이제 겨우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 해가 지나기 전에 이 책을 다 읽으려던 나의 계획이 이루어져서 기쁜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진해로 내려온 이후로 예년과 다르게 올해 연말은 비교적 책과 함께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의 생활은 약간 적적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내적 성숙의 기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1권 <2월 혁명의 발발과 이중 권력의 수립>, 2권 <반 혁명세력의 준동>, 3권 <노동자 국가의 수립> 으로 이루어진 총 1600페이지 분량의 <러시아 혁명사>는 혁명의 폭풍 속에서 그 중심에 있었던 저자 트로츠키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어떤 혁명사보다도 사실성이 뛰어나다. 또한 혁명가답지 않은 화려한 문장과 행간에서 흘러나오는 문필력은 당시 가장 오른쪽에서 위대한 정치가이자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에 비유될 만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스탈린에 대한 지나친 반감과 볼셰비키당 중에서도 가장 왼편에 서있었던 혁명가로서의 편견은 역사서로서의 중립성을 다소 해손 시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왕실의 골칫거리였던 라스푸틴의 암살과 함께 부패한 로마로프 왕가의 축배로 시작된 러시아의 1917년은 비록 제국주의 전쟁인 세계 1차 대전 중이긴 하였지만, 짜르의 통치와 봉건 귀족들에겐 나름대로 희망찬 새해였다. 

 

루이 16세 만큼이나 무능했던 니콜라이 2세는 2월 혁명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던 날에도 그의 황후에게 “아주 좋은 날씨, 당신이 건강하고 평온하길 비오....부드러운 사랑을 당신에게...”라는 전보를 보낼 정도로 위기의 상황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혁명과 반 혁명세력간의 이중권력, 혁명세력의 봉기와 반혁명세력의 쿠데타, 보나파르트와 케렌스키 등 여러 면에서 러시아 혁명은 120년 전의 프랑스 혁명과 너무도 유사한 과정을 겪게 된다.  단지, 프랑스 혁명은 결국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그친 반면,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을 넘어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2월 25일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 총파업과 방위군 연대들의 반란으로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는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를 수립하게 된다. 노동자, 병사 계급으로 이루어진 소비에트와 자본가 계층과 민주주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연립정부로 구성된 이중권력의 엉성한 체제를 형성하게 되고, 혁명세력의 ‘7월 시기’를 거처 코르닐로프를 수반으로 한 반 혁명세력의 ‘8월의 쿠데타’로 일진일퇴를 거듭한 후, 보나파르트체제를 꿈꾸었던 동궁의 주인 케렌스키를 향해 볼셰비키 당의 무장봉기를 촉구한 레닌에 의해서 10월 혁명은 인류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노동자 소비에트 국가’를 수립하게 된다.


러시아 혁명사는 그 어떤 혁명사보다도 역동적이며 유기적인 변증법적 역사흐름을 보인다. 이런 유기적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혁명가가 아니라 바로 인민 대중이었다. 대중은 혁명의 법칙을 인식하진 못하지만, 2월 혁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인민의 봉기는 자연 발생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소수였던 볼셰비키 당에게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절대적 지지를 보낸 대중의 인식 변화는 우연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혁명의 과정은 이론적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 필연에 따른 것이라고 트로츠키는 주장한다.


지난 과거에 있어서 소비에트체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이자 발현 체 가운데 하나였다. 인류의 다양한 불평등들, 계급문제, 종교문제, 여성의 권익문제와 민족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던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던 10월 혁명이 러시아 대중에게 선물한 소비에트체제는 비록 그 유토피아적 이상의 종착점인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20세기 내내 서방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발전할 수 있는 충실한 감독자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신성한 사적 소요권’에 대한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소비에트체제는 무너지고 전 세계가 자본민족주의 체제로 돌입한 21세기에는 다시 종교와 민족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신의 모순 속에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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