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그 거대한 행보 - 레이 황의 거시중국사
레이 황 지음, 홍광훈. 홍순도 옮김 / 경당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주말 TV에서 ‘징기즈칸’이라는 중국판 대하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서점에서는 징기즈칸 관련 소설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을 알자는 현 시류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이런 시류에 편성해 난 며칠 전 중국관련 서적 10여권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다 읽을 수나 있으련지 모르겠다.


이번 책은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라는 책의 저자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레이황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이 책을 읽기 1달 전에 백양의 <맨얼굴의 중국사>를 읽은 후여서, 두 중국 역사가-사실 백양은 역사가는 아니지만-의 사관을 비교할 수 있는 재미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레이황이 중국 역사의 거시적인 흐름을 유물론적 사관으로 접근한 것에 비해, 백양은 유심론적 사관으로 일관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벗어날 수가 없는가 보다. 쟝제스 밑에서 국민당 군대 하에서 10년 정도의 군 생활을 지내다 미국으로 도피하여 설거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만학도로서 역사가의 길을 걷게 된 레이황 으로서는 당연히 유물론적 사관을 가질 수 밖 에는 없었으며,  대만의 국민당 일당 독재 하에서 반 체재인사로 분류되어 10여년의 감옥생활을 지낸 백양으로서는 필연적으로 유심론적 사관을 가질 수 밖 에는 없지 않았을까? 


레이황은 중국의 계층 구조를 ‘햄버거‘에 비유하면서, 유교사관에 입각한 정체된 사대부 관료의 상층구조와 중국 대륙의 생산적 지지 기반인 소규모 자작농의 하층 구조로 설명한다. 한나라 이후로 건립된 왕조들은 이 두 집단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어떠한 제도적 장치-유교적 인본주의, 왕도 정치, 인의사상, 과거제도등-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에 따라 그 왕조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두 계층 구조의 본질적인 구성원은 2000년 가까이 정체된 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이며, 그 주원인을 고대 중국의 토지제도와 세율제도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반면, 백양은 중국의 상부 계층을 ‘된장독‘에 비유하면서, 어떠한 변화도 없이 유교라는 관념론에 빠져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상부 구조의 정체성에서 근대 중국의 후진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두 가지 설명 다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기원전 200년경 로마의 스키피오가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을 물리쳐 지중해상 세력을 장악하면서 대 제국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인도에서도 이 시기에 찬드라굽타에 의해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가 건립된다. 이 시기가 바로 중국 시황제 진나라가 건립된 때였다. 어쩌면, 역사는 동서 문명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출발을 시작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역량에 의해 서로 갈 길은 달랐다고 할 수 밖에는 없다. 로마가 법과 군율에 의해서 제국을 유지 하였다면, 중국은 유교사상과 비옥한 황토에 의해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법과 군율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했으며, 이것이 정체되는 순간 로마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종교와 마찬가지로 유교사상이라는 것은 좀처럼 흔들림 없이-아니 황하의 퇴적물처럼 점점 더 싸여만 갔고, 비옥한 황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었다.


진나라 때는 시기적으로 보나 제도적으로 보나 로마와 비슷하게 모든 것을 법으로 다스릴 려는 법가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방이 한나라를 건립하면서, 유교제도가 국가적인 사상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고, 당나라로 접어들면서 과거 제도의 도입으로, 귀족세력의 소멸과 함께 지식계층인 사대부 계층이 등장하게 된다. 또한, 당나라 이세민의 균전제 실시는 봉건제 하의 농노적 위치에서 소규모 자작농이 중국 인민의 주류를 이루는 생산 기반이 되었다. 7세기경인 이 시대만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서양에서는 아직 로마 붕괴 후, 아직 나라나 민족 관념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아랍지역은 마호메드라는 예언자의 힘으로 이슬람 통일을 위한 피를 흘리고 있을 때에 중국은 벌써 인민 대부분이 자유민으로서의 하층구조를 형성하고 있었고, 능력에 의해 상층 구조로의 신분상승이 가능한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과거 제도가 이미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하부계층과 상부계층의 갈등을 해소해주는 사상적 배경으로 유교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황제에 대한 권위와 상층구조에 대한 존엄을 합법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고이지 않고, 흐르는 법이다. 근대 중국을 한낱 종이호랑이로 만든 것은 바로 과거제도와 사대부라는 된장독이었으며, 소규모 자작농의 지위를 천년 넘게 유지한 중국인민의 시민정신의 결여에 있다고 하겠다. 그에 대한 대가로 1940년 아편전쟁이후부터 문화 대혁명까지 150년간 중국은 처절한 개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성장세는 과히 위협적이라고 할 만하다. 옛날, 몽골족이나 만주족이 중국이라는 큰 용광로에만 들어가면 스스로가 녹아버렸던 것처럼, 지금 세계의 모든 자원과 자본이 중국으로 빨려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시민정신이나, 자본주의에 입각한 사유재산 시스템의 정립이 중국에서는 아직 모호한 상태로 억제 받고 있다.


과연, 현재 중국은 서구 문명사회로 가기위한 개혁과 혁명의 중간 지점에 와 있는 것 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와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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