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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법성게 연구 - 열린 마음으로 우주를 품다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26년 9월
평점 :
이거구나!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철학의 맥](2008) 2장 의상: 존재의 평등성 2) '즉문과 중문'에 대한 내용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새롭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책의 한 문장과 한 단락에 고도로 축약된 내용은 저자의 다른 책의 도움으로 굳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게 저자의 모든 책은 본래의 나를 찾게 해 줍니다. 나를 나답게 해 줍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이미 해인삼매에 들어 있고 모두 부처의 지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기이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이미 해인삼매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경주에 갔다 왔다고 말하면서, 거기에서 당신을 봤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이미 경주에 있었고,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그리고 사실은 여기가 바로 경주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게 해인삼매의 자리는 중생이 처음 가보는 자리가 아니라, 중생이 이미 거기에 있는 자리, 본래자리이다."(212쪽 인용)
저자가 2008년에 [한국철학의 맥]에서 불과 16페이지로 의상 화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그것의 주석이고 주해입니다. 누구라도 그 문장에 담긴 깊은 경지와 정신을 이해하게 하고 견성 견도하게 하여 수행하여 증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의상 법성계 연구]에 설명된 모든 내용은 아마도 이미 18년 전에 [한국철학의 맥]에 모두 담겨 있었을 겁니다. 저자의 더 많은 글과 책이 세상에 나와 본래 부처이지만 자신의 본래면목을 망각한 중생을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학계에 만연하다고 하는 '비판불교'의 '대승비불설'이 왜 부당한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서 또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8게송만 예를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의상의 법성계 제8게송(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은 곧 하나이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화엄의 중문과 즉문에 대한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었습니다. 특히 균여의 '다라니의 리용(理用)에 대한 설명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압권입니다.
균여: "중문은 만드는 주체인 인 바깥에 만들어지는 과가 있으므로 인과도리문이고, 즉문은 인연 당체가 곧 공하여 그대로 인이면서 과이므로, 만드는 주체인 인 바깥에 만들어지는 과가 없으므로 덕용자재문이다."
한자경: "중문은 심층 차원에서 성립하는 상입을 뜻하므로 리의 입장에서 존재를 설명한 것이고, 즉문은 표층 현상 차원에서 성립하는 상즉을 뜻하므로 용의 입장에서 존재를 설명한 것이다. 현상의 근거가 되는 심층의 관점(중문)에서 보면 심층과 표층이 성과 상, 인과 과를 이루기에 '인과도리'라고 하고, 일체가 상호 인연관계에 있는 표층 현상의 관점(즉문)에서 보면 인과 과가 따로 없기에 '덕용자자'라고 한다."
이 내용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도식화하고 있습니다.
중문: 인과도리문, 리의 차원
즉문: 덕용자재문, 용의 차원.
이 책에서 모든 게송은 간단 명료하게 도식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본문의 내용을 의상과 저자의 의도대로 온저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과학의 체계의론의 상호의존성 등의 개념을 빌려 불교를 연기법에 국한하여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승비불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균여의 인과도리문과 덕용자재문에 대한 설명은 시원하고 상쾌한 경종이 될 것입니다. 대승비불설을 비판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심의 절대와 무한의 경지가 반드시 고수되어야 하는 것은 그 경지가 마치 용광로처럼 자본주의체제의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현실을 짓누르는 분별과 차별을 녹여 낼 수 있고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제정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승비불설의 주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