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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일심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회통
한자경 지음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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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깨달음의 경지를 명쾌한 논리와 개념으로 모든 사람에게 "견도", "견성"으로 이끌어 줄뿐만 아니라 견도 이후 "수도"와 "증득"의 구경의 경지까지 나아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책입니다. 한자경 교수님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회통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마치 바람이 어떤 경계에 굴하지 않고 자유롭게 넘다드는 것처럼 그렇게 회통이 되고 있습니다. [선종영가집강해], [대승기신론강해], [성유식론강해], [능엄경강해]의 성과가 있기에 가능한 진실한 결과일 것입니다. 한자경 교수님이 깨닫고 수행하여 증득한 본래마음이 마치 바람 처럼 불교철학사의 역사적 시공간을 넘나들기에 이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익숙한 불교의 개념이라 이미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 주고 이 책에서 풀어주고 있는 불교 전문용어의 개념의 해석으로 인해 불교 깨달음의 깊은 경지를 명료하게 알 수 있고 그리고 깊은 수행과 증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도 선명하게 알 수 있도록 안내해 줍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반야심경, 금강경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인해 두 경전의 깊은 의미를 다시 새롭게 생각하게 해 줍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음을 자각하게 해 줍니다. 

대한민국에 한자경 교수님과 같은 학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현혹되어 절대와 초월의 일심의 경지를 깨닫기가 더욱 힘들어 질 수 있는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학기술은 한 갓 구름에 불과하여 그 구름 너머의 공적영지의 광명을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입니다. 그 광명이 있을 때, 과학기술도 참문명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일상도 구제되고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일체 존재와 하나로 공명하는 심층 한마음에 이르러서만, 사랑과 감사, 평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111-112쪽). 극심한 경쟁과 빈부의 양극화로 인해 병들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불교를 전공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누구라도 불교의 깊은 경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입니다. 

K-MOOC웹사이트에서 이 책을 한자경 교수님의 동영상 강의로 볼 수 있습니다. 영어, 불어 번역텍스트도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의 학자가 전 세계에 한국불교의 위상과 깊이를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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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일심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회통
한자경 지음 / 김영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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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깨달음의 경지를 누구라도 향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책. 근현대의 학문과 학자는 상대 너머 절대의 경지에 대한 추구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막스 베버가 통찰했다, 과학주의와 실증주의 그리고 유물론에 세뇌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그의 통찰은 유효하지만 한자경 학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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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에의 초대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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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행하거나 가져야 하는 행위나 말, 생각이나 감정이다.” 한자경 교수의 모든 책은 학자의 본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칸트가 돈호법을 사용해 찬양하고 있는 본분의 뿌리가 경이롭고 고귀한 ”불변의 상태“인데, 그 뿌리는 곧 한자경 교수가 밝히고 있는 칸트의 초월자아인 것이고 그 초월자아는 원효와 지눌의 성자신해와 공적영지에 근접한다.

칸트(kant)가 돈호법을 사용해 ”본분“을 찬양한 글은 유명하다. ”본분이여! 너는 위대하고, 너의 이름은 고귀하구나! 듣기 좋은 말을 듣거나 아첨이나 위험으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영혼에 주어진 너의 법을 따라서만 움직이는 경이로운 사고여! 그래서 언제나 경외심을 지아내는구나. 지금도 언제나 순종하면, 모든 욕망이 비록 은밀하게는 반역을 꿈꿀지라도 그 앞에서는 입을 다무는구나. 도대체 너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너의 위대한 혈통의 뿌리는 어디이기에 이렇게 온갖 욕망과 단절되어 저 높은 곳에서 고고히 움직이는가? 너는 오직 인류에게만 해당하는 고귀한 상태라는 뿌리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강해]. 알렉산더 화이트/박문재 옮김, CH북스, 2022, 18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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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현대지성 클래식 7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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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엽스키가 19세기 서구 근대성을 비판함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지성클래식 고전 번역을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절히 기대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현대지성클래식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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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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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원은 오늘도 그녀를 기다린다." [당신의 손끝] 첫 문장이다. 나는 이 관계의 끝이 어떤 파국으로 마무리 될지 이 짧은 단편의 마지막까지 읽지 않더라도 시작부터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려내는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이 단편 뿐만 아니라 이 소설집 전체가 마치 넷플릭스의 선정적(煽情的)이고 잔인한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소설집을 읽고 있는 것일까? 몰입과 긴장을 원한다면 넷플릭스 보면 될 일 아닌가!


 [태양 아래 반짝이는]에서 등장인물의 인간관계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재미와 몰입 면에서 넷플릭스를 능가한다.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을 모티브로 한 [유령의 집]을 비롯한 이 소설집의 단편소설은 그야 말로 공포스러워 '식인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해 준다. 이 소설집은 일상에서의 비정한 관계 너머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희망을 통해 어떤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반려견과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우리들의 관계가 그렇게 나의 나쁜 의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이 책을 읽고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허구적인 위로와 위안이 줄 수 있는 면피가 이 소설집에는 없다. 


 그럼 왜 무엇때문에 나는 손원평의 작품을 읽는 것일까?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재미와 몰입을 위해서라면 넷플릭스 보면 될 일이고, 일상의 불안에 내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라 우왕좌왕 할 때 내 마음을 마음 '밖' 어딘가에 두어 잠시나마 불안을 잊게 해 주는 매체나 대상을 통해 그 불안을 잠재우면 될 일 아닐까? 자본주의체제에서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고 싶으면 [세습중산층사회]나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과 같은 좋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 될 일이다. 


 손원평 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자본주의체제가 야기하고 있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시중의 수많은 사회과학 관련 책들이 지구 위의 일체존재가 모두 상호의존적 연관관계를 통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체계이론'을 통해 전지구적 차원의 생태학적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손원평은 이 소설집을 통해 자본주의체제에서 그런 이론이 제시하고 있는 위기 진단과 대안이 자본주의체제의 하수인의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내가 손원평의 작품을 읽는 것은 그의 작품이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불평등으로 일그러진 일상의 관계를 너와 나로 구분되기 이전 경계 너머의 '하나'의 경지에서 마치 밝은 거울처럼 비춰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각조각 갈라졌어도 내가 나라는 건 내 마음"이라고 했을 때 갈라진 내 마음도 없지 않은 분명한 현실이지만 갈라진 조각 너머의 차원을 달리하는 작가의 '마음(一心)'이 있기에 문학은 그토록 현대사회의 서늘한 민낯을 '조망'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체제에서 그저 정신없이 살다가는 우리 모두 "이리저리 떠돌기만 반복하다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수도 있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도 그럼에도 "한발짝씩 나아가기 시작"하면 '도달할 목적지'가 있어 "전보다 근사한 곳", "어떤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감당해 낼 수 있는 것은 문학의 자비로운 '마음'이 있어 가능할 것 같다. 이것이 넷플릭스가 아닌 손원평의 소설을 읽게 하는 나의 이유인 것 같다. 


*이 서평은 출판사 이벤트에 신청하여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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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lhj 2026-04-1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마음이 있기에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제목이 주는 ˝나쁜 의도가 없다˝라는 표현속에서 마음, 진심이 통하면 만나지게 됨을...
책을 통해 진심으로 만나보겠습니다.

- 2026-04-1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저리 떠돌기만 반복하다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수도 있다.˝라는 문장이 참 와닿네요. 아등바등 바쁘게 살아가지만 부유하듯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우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다시 짚어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늘 바로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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