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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평점 :
대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같은 과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독립문을 지날 때였다. 그 친구는 조용히 "저게 독립문이냐? 책에서 보던 것보다 많이 작네?"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바라보게 된 독립문은 생경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경이로울 것도 존귀한 것도 아닌 그저 그 동네의 나무나 풀들처럼 인식되어 왔었던 것이다. 서울은 그저 불빛이 번쩍이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그런 곳만은 아니다. 서울의 사람들은 많은 것을 곁에 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행을 떠나고자 할 때 서울의 어디로 가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서울의 고적함을 느끼는 순간은 봄, 가을에만 찾아가는 덕수궁이다. 그곳에 가면 도시의 소음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발산되는 신경질도 사라진다. 매번 찾아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잠시 기대어 쉴 때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이다. 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고 느끼는 순간, 다시 일상의 시끄러움으로 돌아오게 된다.
숭례문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였기 때문에, 늘 그렇게 우리가 보살피지 않아도 나보다는 더 오래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0년이 넘게 서울에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는지 느끼지 못했다. 3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잊고 살아왔다. 이 책은 다시금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추억들에 대해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해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묵직해졌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이곳에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지친 서울의 삶에 잠시 휴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은 작가가 기억을 일깨워주는 것과 동시에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기억을 끌어낸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