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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역사 -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
피터 버크 지음, 이정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평점 :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무지는 전통적으로는 지식의 부재 혹은 결핍을 뜻하는 것으로 단순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개척 대륙이나 원리를 밝혀내지 못한 과학적 현상 등은 단순한 무지라기 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무지나 지식으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가 나타나는 모습은 개인이나 집단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무지를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조작되거나 유지된 현상도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자는 무지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하여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책을 썼는데, 제1부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회의 무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지에 대한 정의로 시작하여 철학자들의 견해, 집단, 연구와 역사, 종교와 과학, 지리학의 무지 등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부는 1부에서 다룬 무지의 결과가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의 무지, 비즈니스, 정치, 무지로 인한 놀라움과 재앙, 비밀과 거짓말, 불확실한 미래, 과거에 대한 무지에 이르기까지의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과거에 개인들이 무지했던 큰 이유는 사회에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적었고 주로 입으로만 정보가 전해지다 보니 그 정확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오늘날 개인들이 무지해지는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골라내기가 어려워져 자신이 정보를 갖고 있는 분야 외에는 무지한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정보의 유통이 너무나 많고 쉬워진 정보화 사회지만 개인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무지가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들의 무지 외에도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대중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거나 속여서 나타나는 무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려 허위정보를 양산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담긴 뉴스를 통해 대중을 의도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만들어서 권력을 유지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죠. 또한 앞에서 말한 개인의 무지에 의한 정보의 불균형은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지라는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지적 호기심의 정도도 다르고 축적해 놓은 지식의 깊이와 양도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지역사회 혹은 공동체로 발전해서 개인들의 무지도 커졌을 때 그 무지를 자신의 이익에 이용하려는 사람들, 혹은 국가나 단체가 나타나면 그 개인들이 위험해 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양사를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니 16~19세기 서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되었구요. 인간은 누구나 아는 영역보다는 무지의 영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무지함을 갖고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무지함을 자각하고 무지의 반대에 있는 아는 영역을 넓히려는 지적 호기심을 항상 가지고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