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종친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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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귀족제도, 인도의 카스트제도 그리고 양반과 노비로 양분되는 우리나라의 신분 세습제까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선택할 수 없는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신분제도가 존재했다. 표면적으로 신분제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여전히 우리네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노비종친회는 알게 모르게 우리네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뿌리 깊은 신분제도에 대한 웃픈 이야기라 하겠다. 종친회는 보통 성과 본 같은 일가붙이의 모임, 뿌리 깊이 ‘우리는 양반 입네’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을 이른다. 특히 종친이라 함의 왕의 친족을 가리키는 것처럼 종친회와 노비는 어울리지 않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조합이다.

"모두가 평등한 단군의 자식일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적서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차렸다. 문중대회를 하던 날의 풍경과 공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다가왔다. 유서 깊은 가문의 자손들로서 상반된 부류와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법을 그들은 결코 잊은 법이 없었던 것이다. 헌씨들을 어느 정도 상대해준 건 동등한 위치에서가 아니라 하등 집단에게 베푸는 자선에 불과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 눈빛은 수 세기 넘게 대청 위에서 내려다봤음직한 어떤 오만함을 물려받은 게 틀림없었다." (p.280)

조선 초기 전체 인구의 10%도 되지 않던 양반이 바야흐로 21세기에는 전 국민의 대다수가 양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신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결과가 아닐까,,,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성을 가진 주인공 헌봉달. 종친회는 고사하고 자기 가족 이외에 ‘헌’씨의 ‘ㅎ’도 구경한 적이 없다. 심지어 호기롭게 벌였던 사업을 말아먹고 빚쟁이를 피해 도망간 본가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으로 찾은 고문서는 선대 할아버지가 돈을 주고 벼슬을 샀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공명첩으로 판명되어 급기야 전국적으로 노비 가문으로 낙인이 되기에 이른다.

무슨 꿍꿍이일까,,, 헌봉달은 전국적으로 노비 가문임을 알린 ‘진주 헌씨’ 종친회를 설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허름한 종친회 사무실을 꾸리고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연으로 똘똘 뭉친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진주 헌씨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 가문이 세상에 노비래요, 노비! 모르셨어요?”

노비종친회의 웃픈 상황을 완성시키는 것처럼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전업주부, 명예욕으로 가득 찬 노교수, 어둠에 몸담았던 전직 깡패 출신의 식당 주인,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 친모를 찾아 나선 해외입양아에 우여곡절 끝에 엄마의 성을 이어받은 문제아까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그럭저럭 사심으로 가득 찬 종친회가 모습을 갖추고,. 비록 노비 가문일지라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혈연의 정이 그리웠던 진주 헌씨 종친회원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비종친회라는 웃픈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이어가며 애달프게 찾고 싶었던 나의 뿌리이고, 가족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이해와 용사가 필요하다는 묵직한 이야기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양반이면 어떻고 노비면 어떤가~ 그저 내 가족이 최고인 것을!!!

[ 네이버카페 문화충전200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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