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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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향년 89세의 일기로 영면하신 초대 문화부 장관, 국립국어원 발족으로 기억되는 故 이어령의 유고집 작별. 담담하게 건네는 작별 인사만큼이나 간결하고 담백하다. 글을 쓸 수 있는 남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끝까지 펜을 놓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한 채 죽음을 받아들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이 전하는 작별 인사를 만나본다.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생명자본, 눈물 한 방울을 의미하는 “잘”을 남겨두고, “잘 가” 하고 손을 흔들 때 미소 지으며 “너희들은 잘 있을 거야” 하고 안도하고 떠날 수 있다는 마지막 전언이 뼛속까지 이야기 화수분으로의 삶을 살았던 故 이어령 작가의 마지막 작별의 마음을 떠오르게 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맛있으면 바나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던 구전 동요를 키워드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마지막 작별 인사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단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했던 천상의 복숭아는 뒤로하고, 사람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천하게 여겼던 원숭이를 외국 문물의 시작으로 애증의 관계로 대표 되는 미국을 상징하는 사과 -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품종으로 자리 잡아 버린 사과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 와 모양도 맛도 비싼 몸값도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과일이었지만 대중적인 과일이 되어 우리네 삶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바나나와 기차, 비행기까지 평온했던 우리네 삶을 파고들어 삶을 변화시킨 남의 나라 것들을 지나 마지막 결론은 백두산이다. 떴다 떴다 비행기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날아 오를 수 있는 비행기로 백두산으로 향하고, 마음을 밭을 갈아 반도성을 회복할 것을 당부한다.

"뜬다는 것은 바람에, 물결에, 공기에 뜨는 거니까 내 의사대로 갈 수 없어요. 떠다닌다는 것은 떠돌이예요. 종이비행기를 던져보세요. 어렸을 때 애들하고 장난하다가 재한테 보내야지, 하고 날려도 엉뚱한 데로 날아가요. 왜? 종이비행기는 바람을 따라 제멋대로 돌아다녀요. 그걸 글라이더 활공이라고 그래요.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못 가요. 뜨긴 뜨는데 날지는 못하는 거야. 난다는 것은 자기 날개를 달고 자기가 가고싶 은데를 향해서, 목표를 향해서 가는 거예요." (p.56)

버려둔다는 것. 자칫 사라질 것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우리네 일상. 타버린 밥을 버려두지 않고 누룽지를 만들고, 한 겨울을 나기 위해 버무려둔 김치가 맛깔스러운 묵은지가 되고, 시들어 사라졌어야 하는 푸른 잎들이 햇볕을 담뿍 받아 우거지가 되어 나타단다. 단단한 두부에게 온몸을 내어주고 몽글몽글한 비지가 되어 입맛을 돋우고, 할 일을 다한 콩잎은 새콤달콤 짭조름한 짠지가 되어 소박한 밥상을 완성한다. 버려둔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가는 시간,,, 더이상 건낼 수 없는 마지막 인사를 읊조려 본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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