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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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에게 감자를 선물했다면, 악마는 감자를 튀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선물하지만, 악마는 일용할 양식에 검은 유혹을 한 스푼 얹을 수 있도록 감자를 튀기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명제,,, 악마와의 거래가 결코 순수한 도움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경고의 메시지라 하겠다.


모두가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화려한 도시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낡은 집과 그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손녀.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가족이 되어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끔 정신줄을 놓곤 하던 할머니가 남는 방을 지옥에 월세로 내줬다.


폐가가 되어가고 있는 낡은 집을 지옥에 세를 줬다는 발칙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끔찍한 지옥의 죄수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와 손녀의 시크함과 악마의 달콤한 유혹으로 이어진다. 믿거나 말거나 지옥의 리모델링을 이유로 이승의 한복판에서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에게 형벌을 가하고 있다.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를 것 같은 지옥의 악마지만 철저한 계약으로 이승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보통의 악마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갈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터인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계약의 범위 안에서 사용하는 악마라 재미있는 설정이다.


악마에게 세를 내어준 낡은 집에 사는 집주인 할머니와 서주. 불의의 사고로 큰 아들을 가슴에 묻고, 하나 남은 둘째 아들은 할머니의 재산 – 비록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일지라도 –을 노리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과연 서주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을 지켜낼 수 있을까?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서로를 위하는 이들과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가족을 도구로만 여기는 이들이 대비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익숙한 어둠이다. 다만 불안은 어둠으로부터 오지않는다. 할머니는 나를 이 집에 들여 아낌없이 먹였고, 그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집을 쓸고 닦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집을 '우리집'처럼 여기게 된 악마는, 대체 무엇을 받아먹으며 홀린 것일까. 대추를 받아 먹은 건 아귀였잖아. 질문을 바꿔보자면, 악마는 대체 무엇에 굶주려 있을까." (p.172)


한편, 할머니의 집을 지옥으로 임대한 악마는 당당하게 집안 곳곳을 활보하며 딱! 계약한 만큼만 재료를 써서 서하의 마음을 두드린다. 달콤하고 고소한 미숫가루로부터 시작된 유혹은 할머니를 돌보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서하를 보듬어준다.


지옥의 죄인 중 유일하게 집안을 오갈 수 있는 잔반 먹는 귀신 –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부담스럽다 - 을 비롯한 지옥의 인물들과 묵묵히 서하를 지지하는 친구들까지 생생한 캐릭터들이 이어가는 이야기가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오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저자의 필명 늑골(rib), 폐(lung), 심장(heart)를 의미하는 영단어를 의미하는 ‘리러하’ 만큼이나 신박한 소재였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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