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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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책이라는 필수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p.512)

예전에 비해 직업을 ‘천직’이라 여기기보다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애정도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도 줄었기 때문이리라. 평생직업을 대체하는 N잡이 대세로 자리 잡고,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사라지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대한 기사를 본 후 가급적 영화제작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일어나곤 한다. 간혹 영화사들이 엔딩크레딧에 시선을 잡아두고자 간혹 메이킹 영상을 사이사이에 넣어두지만 끝까지 관객의 시선 – 함께 영화를 관람한 나의 동행을 포함해서 - 을 머물게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튼 나에게 엔딩크레딧은 ‘제작자에 대한 예의’ 그 어디쯤의 개념을 갖고 있다.

‘책을 만드는 모든 단계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름들의 엔딩 크레딧’ 소설의 형태로 만났지만 한편의 다큐를 보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나 역시 아직은 종이책이 좋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지라 전자책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무제한 스트리밍을 하고 있는 OTT 플랫폼처럼 원하는 책을 언제 어디서든 다운받아 읽을 수 있는 전자책 플랫폼에 끌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책 속의 등장인물 나카이도의 이야기처럼 – 안타깝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 종이책은 이미 침몰하고 있는 배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의 또 다른 의지처럼 ‘하루하루 실수 없이 나에게 주어진 일을 끝내는 것’으로 침몰하는 배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스러져 가는 것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스러져 가는 책을 만드는 일을 선택하여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패배하는 일은 없다. 스러져 가는 것을 지키는 인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지 않고서는 계속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비장감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한 긍지와 평소의 성취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제작은 계속될 것이다." (p.478)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의 생각 안에서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인쇄’에 대한 비중은 거의 없었다. 작가와 출판의 구성으로 인쇄는 그저 출판의 작은 과정으로만 자리 잡고 있었다. 영혼을 담는 일이라기보단 기계로 쭉쭉 찍어내는 가벼운 공정쯤으로 여겼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는지,,,

도요즈미인쇄를 배경으로 작가의 원고가 입수된 이후부터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쇄를 모노즈쿠리로 정의한 책을 만들고 싶은 영업맨 우라모토와 침몰하는 배를 멈추기 위해 하루하루 실수 없는 삶을 채워가는 나카이도, 종이에도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미스터 꿍 노즈에를 중심으로 책 속에서 삶의 안식을 찾은 오퍼레이터 후쿠하라, 인쇄기를 살아있는 동료처럼 귀하게 여기는 규, 기계로는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생생한 별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로까지 다섯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 권의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그들의 노력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늘은 소소하나마 여러 가지로 다행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내 천직이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며,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 지금 인생이 아닌 다른 인생을 막연히 동경하고, 동경을 품은 채 멍하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재 눈앞에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사 천직이 아니어도 좋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을 일상의 갈피갈 피에서, 도처에서 만난다면 아마 행복할 것이다." (p.465)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노력으로 책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책이 작가와 출판사만으로 탄생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보이지 않는 마지막 장의 엔딩 크레딧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 느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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