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저승 최후의 날 1~3 - 전3권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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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성의 폭발로부터 촉발된 지구 멸망과 그곳에 뿌리를 내린 생명체의 전멸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한 안전가옥의 저승 최후의 날. 웹 소설의 특성상 가독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무려 1,500여 페이지 달하는 분량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한다.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은 평소 선호하던 분야라고 할 수 없는 SF 장르임에도 완벽한 몰입감을 선물한다. SF 어워드 웹 소설 부문 대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저승 최후의 날'은 안전가옥 엔솔로지 "대멸종"의 한 자 품으로 출간됐던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 60여 페이지가 1,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으로 탈바꿈한 작품이다. 풍성하게 살을 붙이고 다듬어 장편으로 재탄생한 작품은 단편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믿기지 단단한 장편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왠지 단편으로 먼저 만났으면 굉장히 아쉬웠을 듯하다.

“2020년 6월 7일 오전 2시 48분, 채호연과 김예슬은 사망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이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일찍.” (1권 p.15)

무심코 넘겨버린 주인공들의 생의 끝자락을 알린, 그저 주인공과 사후세계를 연결하기 위한 연결고리쯤으로 여겼던 한 문장은 앞으로 벌어질 대멸종의 무게감을 표현한 한 줄이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이들이 채호연과 김예슬이 겪은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무서운 예언이었다.

천문 학도였던 호연은 저승 명부의 천수와 다르게 밀려드는 망자들을 보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시왕저승의 사자에게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시절 의심하고 있던 알두스 폭발에 대해 전한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대멸망의 위기를 맞게 된 인류와 그들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왕저승의 사자들.

살아생전 쌓은 업에 대한 심판을 거쳐 영혼을 환생시켜야 하지만, 밀물처럼 저승으로 몰려들어온 영혼들에게 제대로 된 심판의 시간은 고사하고 환생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환생을 준비하던 시왕저승의 사자들은 인류의 멸망은 곧 저승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설에 맞닥뜨리고,,,  시왕저승의 사자들과 망자들은 저승의 소멸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과연 이들은 인류와 저승의 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죄에 대하여 벌이 있다면 모두가 남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일시에 죽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벌일 것입니다. 누대로 이어져 온 혼백들의 업이, 이날 한순간 정산되지 않으면 안되었 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2권 p.31)

가설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며 단단해져가는 천문학도 호연과 저승의 소멸을 막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시왕저승의 비서실장 시영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등장, 흥미로운 저승의 이야기를 채워간다. 더불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후세계는 억겁의 시간 끔찍한 형벌을 반복하던 무시무시한 지옥의 모습이 아닌, 공정하지 못했던 이승에서의 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도록 심판하고, 망자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세련된 모습으로 재미를 더한다.

"이승이 살아 남은 가해자들의 땅이라면, 저승은 먼저 죽은 피해자들의 땅입니다. 예전에 끔찍한 지옥이 존재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아까 소개해 드렸던 염라대왕님 말씀처럼, 먼저 죽은 이들이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둔 이들에게 하는 잔인한 화풀이였던 거겠죠." (2권 p.317)

"호연은 신시왕경을 편집하면서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그중 예슬이 꼭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문장이 있었다. '이승이 살아 남은 가해자들의 땅이라면 저승은 먼저 죽은 피해자들의 땅이다.' 지연된 정의가 성취되는 곳" (3권 p.492)

개인적으로 짧지 않은 책을 읽는 동안 인류, 저승의 소멸이라는 주제보다 등장인물의 서사에 집중하게 된 책이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호연과 자신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던 최고의 빌런 정승재 교수 그리고 대의를 자신의 마음을 덮어둔 시영의 슬픔과 갑자기 나타난 사자들을 도와 담담히 최후를 준비하던 이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유 있는 결정들이 극강의 몰입감을 선물한다.

"이윽고 목성이 떠올랐다. 망원경이 없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알두스를 절묘하게 가리고 있는 목성은 그 크기가 평소의 다섯 배는 되어 보였고, 그 몇 배나 되는 거대한 구름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알두스의 우주 방사선을 정면으로 받아 산산조각 나고 있는 목성의 가스 표면이 태양계에 흩뿌려지는 광경이었다. 작업자들은 모두 그 광경을 보았다.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나치게 초현실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으며, 지나치게 아름답고, 지나치게 흉흉했다." (3권 p.364)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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