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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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분위기의 단순한 표지가 ‘슬픔’이라는 주제를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쌓이고 쌓인 슬픔이 모여 강이 되어 흐른다. 열일곱 소녀에게 주어진 현실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불행을 끌어들이며 채 자라지 못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저 사랑스러운 애칭 야오야오로 불리고 싶은 열일곱 소녀 이야오. 제대로 된 보호는 고사하고 믿고 의지해야 하는 엄마로부터 ‘죽음’을 강요당하는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엄마의 공허한 메아리 같은 강요가 비록 고된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푸념일지라도 어린 소녀에게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비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슬픔을 강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소녀 이야오를 비롯해 엄친아로 불릴 만한 모범생 치밍, 너무 다른 쌍둥이 남매 구썬샹과 구썬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여겨지던 치밍으로부터의 외면은 이야오의 삶의 의지를 꺽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먼 훗날, 아주 먼 훗날. 눈가에 묵직하게 떠오르는 그것은 기억에서조차 다시는 다가갈 수 없는 지뢰밭 같은 곳이었다." (p.156)

매일 아침 따뜻한 우유를 건네던 치밍은 눈길은 계속되는 이야오의 불행을 버텨내지 못하고 그와 비슷한 부류의 밝고 명랑한 소녀 구썬샹에게로 도망쳐버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리를 채워주던 구썬시의 온기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차갑게 식어버리고, 급기야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있던 그녀를 잔인하게 밀어버리는 계기가 되고 만다.

"햇빛이 눈부신 오후, 이야오와 치밍은 길가의 노천카페에 자리 잡고 앉는다. '슬픔'이라는 음료를 또 다른 잔에 있는 '행복'이라는 음료에 천천히 따르고 가만히 젓고, 젓고, 또 젓는다. 잔에서 작은 구름이 피어올라 자신을 뒤덮는다." (p.364)

어린 소녀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었던 부모의 학대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말간 얼굴로 이어지는 학교폭력은 소녀의 생명을 앗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음 한자락 의탁할 곳이 없었던 어린 소녀는 슬픔의 강에 생명을 내어주며 조금씩 말라간다.

많은 것을 바리지 않은, 한 줌의 온기와 위로를 바랐을 뿐인데 끔찍하리만치 잔인한 세상은 어린 소녀에게 마지막까지 한줄기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소녀가 흘려보낸 슬픔은 지루하고 긴 장마가 세상을 덮어버리듯 어둡고 습한 강이 되어 소녀를 삼켜버렸다.

"무겁고 침울한 천둥소리가 밀려왔다. 뒤이어 지붕 위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소리가 들렸다. 긴 장마가 시작됐다." (p.354)

중국 작품은 많이 접해보지 않았지만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이야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또한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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