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핏빛으로 휘갈겨진 제목으로 가득 찬 표지가 강렬하다. 보통 ‘잘했어!’ 또는 ‘좋은 직업’ 정도로 해석되곤 하는 ‘Good Job.’ 희망으로 가득 찬 문장을 굳이 섬뜩한 핏빛으로 휘갈기듯 써놓은 이유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다.

“[넌 꿈이 뭐니?] 담배를 피우던 중년 여자가 대뜸 물었다. 꿈. 흔한 말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커리어 우먼. 지금은 꿈은커녕, 내일도 없다. (p.14)

건재한 대기업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20세기 말 IMF 시절, 작은 사업채를 운영하던 아버지로 인해 꿈을 펼쳐보기도 전 빚쟁이가 되어버린 25살 연희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걱정과 사채업자의 협박을 피해 전쟁터 같은 세상을 헤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업자로부터 청소업체 일자리를 소개받은 연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젊디젊은 고학력 아가씨가 선뜻 나서기엔 부담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 빚과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연희는 용기를 내어 미래 클리닝을 찾아가고,,, 평범한 청소업체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 연희는 적나라한 범죄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p.25)

자신과 엄마를 위해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든 연희는 미래 클리닉 직원이 되어 끔찍한 범죄들이 만들어낸 시체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무고한 피해자가 아닌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치우고 있다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고 있지만 삶이 고되질수록 범죄의 현장에서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주던 원칙마저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합법적인 전문 업체를 지향하며 유혈이 낭자한 범죄현장을 누비던 미래 클리닝과 함께 연희는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든다. 살기 위해 범죄 앞에 눈을 감아야 하는 현실. 살기 위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체 속을 누비며 고군분투하는 고달픈 청춘들의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희망찬 꿈을 꿀 수 있을까. 헤어 나올 수 없는 현실의 고단함이 희망을 비틀어 놓은 핏빛 첫인상만큼이나 묵직하다.

한두 사람만 건너면 피해자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건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과 살기 위해 집을 나와야 했던 아이들까지,,,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크고 작은 비극들은 비단 주인공 연희만의 이야기다. 그 때문일까,,,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그녀들의 고단함이 부쩍 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굿잡
#해원
#캐비넷
#추리미스터리
#한국추리소설
#범죄현장청소
#몽실북클럽
#몽실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