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무죄
다이몬 다케아키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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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나 같은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어줘서”


확정된 판결에 대한 재심을 소재로 하고 있는 사회파 소설이다. 법정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장르만 보고도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재심 = 무죄’라는 공식을 성립시키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을 거스르는 한 문장 “고마워, 나 같은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어줘서”은 관심에 깊이를 더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 그 의미를 상상할 수 없는 매력적인 문장으로 말미암아 완전 범죄를 꿈꾸는 장기 복역수의 합법적인 탈출극을 상상하며 책을 읽기 시작한다.


"경찰의 정의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 검찰의 정의는 재판에서 지지 않는 것, 내가 있던 법원의 정의는 법적 안정성. 딱 잘라 말해 전부 그 하나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변호인의 정의도 마찬가지야. 그런 건 통하지 않는데도 뻔하디 뻔한 변호를 해놓고, 부당한 판결이니 뭐니 부르짖을 뿐 현실에는 눈길을 주지 않지. 모두가 정의에 매몰되는 바람에 무고하고 약한 사람만 눈물을 흘려······." (p.91)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일컫는 ‘원죄’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 ‘재심’. 이미 판결된 사건에 대한 번복을 논하게 되는 재심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재심을 논하게 된 것만으로 무죄를 의미하기도 한다.


21년 전 연쇄 유괴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장기 복역 중인 주인공 히라야마는 21년 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의 기회를 얻게 되고, 히라야마와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람이자 히라야마의 변호를 담당하게 된 변호사 마쓰오카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진실게임이 시작된다.


"당신이 그때 그 유괴범이라면 사형당하길 바라요. 하지만 누명을 썼다면 진범이 세상을 활개치고 있는 셈이죠.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여기 온 거예요. 전부 자신을 위해서죠." (p.72)


스스로의 확고한 의지보다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삿된 계획으로 재심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히라야마는 평온한 그의 일상과 가족을 송두리째 앗아간 21년 전 원죄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완전 무죄를 단정할 수 없는 의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간다.


한편, 연쇄 유괴 사건의 당사자로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과거의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선 변호사 마쓰오카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직접 무죄를 증명한 히라야마에 대한 의심으로 불안함을 떨쳐낼 수 없다.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도록 요구하는 경고지만, 강력한 심증과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무모하리만치 우직한 신념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잊고 진실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벗어던진 채,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는 원죄를 만들어내는 오류를 범한다.


"운전대를 잡으며 새삼스레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히라야마라는 인간과 진심으로 마주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범죄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 수사할 때 에너지가 생긴다. 하지만 그 에너지야말로 원죄를 일으키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범인이 미운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p.304-305)


진범을 밝혀내기 위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의’만이 진실이 되어 어느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원죄를 만들어낸다. 나를, 사회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던 ‘법’이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되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를 위해, 사회정의를 위해, 목숨 걸고 이 거짓 말을 관철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는 것이리라. '정의라는 놈이 제일 큰 악이야.' 식사를 마친 후 서류를 정리하면서 구마가 중얼거렸다. '믿는 바를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런 식으로 미화하는 거지.'" (p.133)


마지막 장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의심과 반전으로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며 21년 전 일어났던 연쇄 유괴살인 사건은 마무리된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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