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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 SF와 로맨스,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망해 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다음 생의 나에게 희망을 건다. 뭐 이런 이유들." (p.210)
누구나 한 번쯤. 벼랑 끝에 내몰린 절박 – 물론, 각자 생각하는 절박함의 정도는 매우 다르겠지만 - 한 인생을 잠시 멈추고,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르는 희망과 함께 다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SF 소설에서 나 봤을 법하지만, 지금도 불치병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이 미래 의학기술에 희망을 걸고 생명 연장을 위해 냉동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처럼 기약 없는 내일을 걸고 냉동인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 뇌를 멈추고, 온몸에 흐르는 피를 뽑아 죽었지만 살아있는 냉동인간이 된다. 절박하지 않아서 일까,,,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은 모습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냉동 전문 클리닉에 근무하는 규선이 해동을 앞둔 B-17903의 냉동 사유를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냉동 전문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순리를 거스르는 냉동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규선에게 해동을 앞둔 B-17903은 특히 더 한심스럽다. 예지몽에서 만난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주저 없이 50년간 냉동인간이 되기를 자처한 그를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규선의 주변을 맴도는 B-17903이 묘하게 신경을 거스른다.
한편, 어쩌다 미래를 맞추기도 하는 예지몽을 꾸곤 했던 50년 전의 기한.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의 도움을 받아 망쳐버린 이번 생을 잠시 멈추기로 한다. 세상이 변해버린 50년 후 깨어난 기한은 망해버린 이번 생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기나긴 동면에 들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혼을 앞둔 가은. 그녀에게는 지금껏 예비 신랑에게 감춰왔던 커다란 비밀이 있다.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선 차일피일 미루던 그녀의 비밀을 알려야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살리기 위한 부모님의 절박한 선택은 가은에게서 평범한 행복을 영원히 앗아가 버렸다.
아이가 절실했던 나이 많은 엄마 주원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이들을 위해 냉동인간이 되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에게 엄마의 냉동시간은 엄마가 꼭 필요한 시간의 부재로 낙인 될 뿐이다.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영하 200도, 과연 그녀의 선택을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자주 다뤄졌던 탓에 어쩌면 밋밋할 수 있는 냉동인간이라는 소재가 꼬여버린 시간을 이유로 얽히고 섥힌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행복을 꿈꾸며 영하 200도를 선택하는 그들의 사연으로 말미암아
생각을 깊어지게 한다. 망해버린 이번 생, 소생을 꿈꾸지만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 한 줌의 행복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구가 돌고 있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지구를 쫓아 걸어간다. 민재만 놔두고. 뒤처지는 민재에게 손을 뻗는 사람은 없다. 지구도 딱히 민재를 위해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다. 민재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사람들만 바라볼 뿐이다. 남자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다음엔 또 뭘 어쩔 건데. 냉동되었던 아버지가 깨어나면 그때라고 수술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까. 할머니가 어찌어찌 돈을 구해왔다 쳐도 그 돈은 모조리 저 크고 높은 건물에 갖다 바쳐야 할 텐데. 수술비, 앞으로의 치료비, 입원비, 생활비까지 혼자서 모조리 책임져야겠지." (p.227)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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