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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의 움직이는 찻집
레베카 레이즌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11월
평점 :
초록색 푸르름 사이로 소녀소녀한 핑크빛 캠핑카와 두 여인의 분주함이 자리잡고 있는 표지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순정만화를 연상시킨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캠핑장이 한 귀퉁이 누구든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모습이다. 여행을 다닐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언젠가 꼭 캠핑카를 갖고 싶다는 소박 - 사악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주차공간을 확보할 방법이 없어서 소박하지만 이루기 어려운 꿈일 수도 있다 - 한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핑크빛 캠핑카 포피가 마냥 부럽다.
"돌연변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남다르다는 거고 요즘 세상에 누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겠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베이지색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이에요." (p.232)
화려한 도시 런던의 미슐랭 레스토랑 에포크의 수셰프 로지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계획된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계획없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가 술김에 결제한 낡은 캠핑카 포피와 함께 계획되지 않은 도전을 시작한다. 서른두 살 생일을 앞둔 어느날 로지의 남편 캘럼은 그녀가 즉흥적이지 않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남기고 그녀를 떠난다. 설상가상 그에겐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 어쩌라고?!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로지. 에포크의 수셰프가 되기 위해 주방의 막내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여전히 만들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미슐랭 평가와 화려한 런던 사람들의 과시욕을 채워줄 음식에 매달리고 있을 뿐만아니라 주방장 자크가 그만두기전까지 그녀에게 허락된 미래는 없다. 뒤도 돌아보지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린 그녀에게 허락된 현실은 즉흥적인 삶을 방해하는 유명 레스토랑의 수셰프 자리와 바람핀 남편 뿐이다.
미래를 생각하며 마시기 시작한 진한 시라즈 와인은 그녀에게 엄청난 두통과 함께 그녀의 전재산이다시피한 거금을 투자한 캠핑카 포피를 남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너무나 낭만적인 움직이는 찻집을 선물했다.
"나는 지금 살짝 앨리스가 된 심정이에요. 토끼굴 속으로 떨어져 이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p.143)
계획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난 그녀는 핑크빛 캠핑카 포피와 함께 바람의 손짓을 따라 움직이며 예쁘고 비싼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줄 음식을 만든다. 무모하리만치 도전적이었지만 아무 조건없이 행복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친구를 만나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겪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있잖아요, 로지. 당신은 항상 자신이 달라져야 하고, 자신을 고쳐야 하고, 남들과 비슷해져야 하고, 틀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는 걸 모르겠어요? 올리가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다면, 과연 그랬을까 싶지만, 그건 당신의 문제라기보다 그의 문제예요." (p.353)
서른두 살 만우절, 즉흥적이고 싶은 마음으로 반쯤 객기를 담아 거짓말처럼 시작한 계획되지 않은 여행은 로지에게 많은 행복을 선물한다. 운명처럼 만난 친구 아리아에게서 천천히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무뚝뚝한 츤데레 캠퍼 맥스와 운명같은 사랑 - 인터넷에서 만난 익명의 올리버에게 캣피싱을 당하기도 하지만 - 을 시작하기도 한다. 우연히 마주한 일탈로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이리라.
"이제 보니 인생의 진정한 선물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사귀는 친구, 마음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돈을 주고 살 수없는 것들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오자 아무 조건없이 포피 수리비를 대납한 맥스가 떠오른다." (p.356)
나른한 주말 오후 따뚯한 햇살 아래, 아기자기한 돗자리를 펴고 향기 좋은 차 한잔을 마시며 로맨스 소설이지만 로맨스 소설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조금 긴 동화를 읽은 기분이다.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생긴다는 건,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인생의 엄청난 변화다. 그것도 아리아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특별한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말이다." (p.355)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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