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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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요한건 나와 함께 있어줄 사람이다."

표지가 주는 평온함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뭐랄까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서정적인 에세이를 마주하는 느낌으로, 더디다기 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는 느낌으로 책장을 넘긴다. 한 사람으로 맞이하는 죽음과 더 이상의 탄생을 두려워하는 인류의 종말. 가볍고 빠르게 읽어내기에는 무겁고 두렵다...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소원한 관계를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암이 자신을 빼앗아 가기전에 암으로부터 자신을 빼앗으려는 친구의 죽음과 기후변화, 식량부족, 팬데믹 등으로 위기에 맞닥뜨린 인류의 죽음을 호소하는 전 애인. 누구도 편하게 마주할 수 없는 인연들이다.

이별을 위한 관계에서 생겨버린 딸과의 소원한 관계. 불타는 집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구하려다 사망한 영웅같은 아빠 - 양육의 책임을 회피했던 - 를 무작정 그리워하며 아빠에게서 자신을 떼어 놓은 엄마를, 무한한 내리사랑을 쏟아붓는 조부모를 원망하며, 불치병을 앓고 있는 엄마의 치료회피를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라고 일축해버리는 무심함에 - 화자 또한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 고개를 돌리게 된다.

"한때 아름답던 나이 지긋한 여성이 말했다. 어떤 나이를 지나면서 마치 나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무슨 까닭인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악몽 말이에요. 예전에 하듯이 나를 불러내거나 나와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요. 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내게 관심을 보이도록 애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갑자기 내가 낮을 가리고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어요." (p.68)

한 때는 아름답던 사람 아니 여인의 나이듦에 대한 죄책감. 나이살이 불고 탄력을 잃은 피부로 인한 볼품없어짐에 대한 불평을 죄책감으로 표현한다. 사람의 나이듦이 아닌 한 때는 아름다웠던 여인의 삶을 죄책감으로, 사실상의 죽음으로 정의한다. 흔희 슬픔일로 치부되어 버리는 여성들의 이야기 나이듦을 죄책감과 죽음이라 여겨보지는 않았으나 같은 여성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에 공감하게 된다.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전 남자친구의 강의를 들으며 이미 헤어진 사랑했던 사람의 나이들어감을 힘들어하고, 스쳐가듯 만나는 인연속에서 무심코 서로의 속내를 들어내는 익명의 편안함과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에서 느끼는 죄책감까지...

"내게 괴로웠던 일은 훨씬 늙어버린 그를 보는 것이었다. 잘생긴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p.38)

나는 살아가면서 나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죽음, 여성의 삶 등 생각이 많아지는 글인지라 읽기 쉬운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평온한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가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됐지만 그럼에도 같은 여성으로서, 한 사람으로 부모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공감과 위로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한다.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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