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 지음 / 마카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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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나는 나의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형제자매의 성공을 진심을 다해 축하하고 있을까, 그들의 빛남을 질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를 비롯한 - 나 뿐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 보통의 사람들은 평범해야한다는 강박에 자신의 마음을 감춘채 가족들을 무지개빛으로 포장한다. 가장 오랜 시간 나와 부대끼며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진심은 꽁꽁 감춰두고 있다. 서로의 성공과 출세를 응원하고, 축하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많은 질투의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지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끝까지 보듬는 것 또한 가족이었다.

강남의 한 아파트,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다섯 가족이 있다. 대학교수 아버지와 약사 어머니, 대기업을 당당하게 퇴직하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수재 아들, 공모전 수상과 함께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는 큰딸 그리고 재기발랄한 여고생 막내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걱정거리 하나 없는 평범한 부유층 가족의 모습이다. 어느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펑' 터져버린 폭탄 하나로 고요했던 그들의 일상은 무너져내리고, 가면 아래 감춰졌던 그들의 민낯은 여과없이 드러난다. 폭탄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위태위태하게 힘겹게 버티고 있던 가족을 '펑'하고 날려버렸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게 있다는 말, 비밀 아닌 게 비밀이 되어버린다는 말은 승아가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거다. 말하려고 하면 할 수도 있는 일들이 언제부터인가 목구멍 속에서 꽉 막혀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사코 장애물을 없애려 들때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 모든 노력이 귀찮아졌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 여겼다. 그게 이제는 쌍둥이 형제를 죽이려 했다는 오해까지 불러 일으켰다." (p.189)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폭탄, 테러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폭탄과 테러라는 소재를 걷어내면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총성없는 전쟁터를 마주하게 된다. 진실은 하이에나 같은 익명의 군중들을 거쳐 자극적인 가쉽거리가 되어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고, 가해자로 몰린 피해자는 어느새 또 다른 가해자를 찾아 물어뜯는다.

"교문에 들어서자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폭탄이 터진 후로 조용한 학교생활은 끝났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는데 어딜 가나 시선을 끌었다. 교실에 들어서기 전까지 "폭탄이 재야?"라는 말이 당연하다는 듯 따 라붙었다. 사실과 거짓이 뒤범벅된 소문을 듣고 있자면 승아 자신조차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렸다." (p.157)

평범한 집 현관에서 터져버린 폭탄은 누가, 누구에게, 왜 보냈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아닌게 되어버린다. '펑'하고 터진 '폭발' 사건은 어느새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되어버리고, 피해자일 수 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주연이 되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간다...

폭탄이 터지는 현장을 목격한 장녀 두승아는 어느새 자작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 택배의 주인이였을 지도 모르는 장남 두현은 친구의 여자까지 빼앗는 응당 죄값을 치뤄야하는 나쁜 놈이 되어 있고, 갑갑한 마음에 옥상을 찾았던 막내 승아는 비행청소년이 되어있다. 범인보다 피해자의 인신공격에 몰두하는 익명의 군중들!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씁쓸할 뿐이다.

"어른이 되길 기다리다니, 건희가 새삼 어리게 느껴졌다. 승아에게는 어른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듯 피곤에 절은 얼굴, 세상의 모든 불만을 모두 끌어안은 표정은 일이 풀리지 않아 방에 틀어박힌 언니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사는 엄마도, 교수님 소리 듣는 아빠도, 완벽에 가까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의무를 다할 뿐, 즐거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가끔은 옷을 때마저도 웃는지 우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게 어른의 삶이라면 지금과 다를 게 뭐가 있나 싶다." (p.32~33)

스토리를 시작하는 소재도 신선하고, 이어지는 전개가 씁쓸하지만 몹시 공감가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몰입감있게 완독할 수 있는 책이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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