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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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오리베는 의문을 품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p.534)

'만약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끝없이 하게하는 글이었다. 천상에서 내린 이야기꾼으로 회자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풀어낸 소년범죄는 잔인함을 넘어 법의 처벌기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갈수록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는 소년범죄에 대해 깊은 고민을 남긴다. 더군다나, 이번 소설의 소재가 된 성범죄의 경우 1회성 범죄에서 끝나지않고 다양한 형태로 2차, 3차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한 악질적인 범죄에 해당한다. 작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n번방 사건처럼 확대 재생산되는 성범죄는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다. 심지어 다른 범죄들과 달리 피해를 적극적으로 호소할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은 피해자를, 더 많은 피해를 만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소년범의 갱생도 중요하지만 엄중한 처벌을 통해 소년범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 또한 나가미네의 입장이였다면 기필코 그 몹쓸 놈들을 내 손으로 처벌했을 것이다. 소설속 이야기지만 어리디 어린 소녀들을 한갖 장남감처럼 히롱한 가이지 일당의 범죄에 치가 떨린다!

"도모자키는 미성년자입니다. 게다가 고의로 에마를 죽인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알코올이나 마약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었다고 변호사가 주장하면 도무지 형사처벌이라 할 수 없을 가벼운 판결이 내려질 우려가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갱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피해자 측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빤합니다." (p.183)

해마다 열리는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나가미네의 외동딸 에마는 친구들과 함께 외출하고, 늦은 시간 귀가하는 딸이 걱정되지만 나가미네는 또래 아이들처럼 아빠의 걱정을 지나친 간섭으로 여기는 에마를 위해 연락을 참고 있지만, 도착할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늦은 밤이되도록 에마에게 연락이 닿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불안에 휩싸인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공포... 그 끝에 걸려온 아이의 신원확인을 요청하는 경시청의 전화 한 통. 피말리는 공포 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밝혀지는 진실들은 딸을 잃은 나가야미를 끝이없는 좌절로 몰아간다.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잃어버린 그에게 전달된 한 통의 문자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그의 손에 쥐어주고.... 아이를 잃은 부모라면 누구라도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소년을 갱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잘못으로 발생한 피해자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그에 대한 고민이 현재의 법에는 빠져 있다. 아이의 생명을 빼앗긴 부모에게 스스로의 장래는 알아서 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p.389)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짐승같은 인간들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유유히 법망을 피해간다. 응당 범죄자를 처벌해야하는 법의 칼날은 범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하염없이 방황하며 피해자를 남겨진 가족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삶을 앗아가고야 만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나길 바라나?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유무라는 혼란스러웠다. 나가미네가 복수에 성공하지 못하면 언젠가 스가노 가이지는 체포된다. 하지만 그다음 자신들이 납득할 만한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법의 벽은 가해자를 보호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법은 피 해자에게 냉혹하다." (p.375)

2004년 출간된 책임에도 현시대 소년범에 대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음이 놀랍다. 이미 오래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법의 무딘 칼날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갱생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해자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하는 것일까... 만약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제야 자신 또한 지금 이 세상을 만든 공범자임을 나가미네는 깨달았다. 그리고 공범자들은 자신과 똑같은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금 뽑힌 게 자신일 뿐이다." (p.507)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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