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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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두 대상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사랑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여기는 생각 말이에요.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달리 관습과 제도의 문제를 동반합니다. 반면, 사랑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은 불과 얼마 안된 일이에요.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남녀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현재의 결혼은 근대 낭만주의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생아일지도 모르겠네요." (p. 263)

구속받지 않는 자유연애를 쿨하게 즐기는 젊은 사랑을 그려낸 책이라 여기고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묵직한 ‘사랑’의 정의에 당황하게 된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보다는 자유롭겠지만 나 또한 결혼을 전제하지 않은 자유로운 성생활은 여전히 불편한 사람 중에 하나다. 물론, 자유연애에 쿨한척 해보지만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되면 생각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동거든 원나잇이든 내가 당사자가 아닐 때 비로소 마음을 열고 쿨하게 보게 된다고나 할까. 아직은 자유로운 사랑이 로맨스 소설속에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구시대 인류다. :(

"난 사람들의 욕망을 찍고 싶어. 사람들이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광기와 분노를 드러내 보이는 게 내 목표야. 겉으로 보이 는 세계보다는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보고 싶은 거지." 정우는 짐짓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p.76)

‘사랑 없는 결혼 보다는 결혼 없는 사랑을 지지한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지만 실제 현실속에서 결혼 없는 사랑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사랑이 있다고는 하나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의 ‘사랑’을 허용한다. 다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건 예전보다는 ‘이혼’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 딸 가진 엄마도 딸의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여겨지면 이혼을 권하는 세상이니 - 는 정도라고나 할까. 이런 변화를 보면 얼마지 않아 법 테두리를 벗어난 ‘사랑’도 보편적인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쌍둥이 형의 힘을 빌어 사회적 성공을 이룬 한 남자의 결혼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쌍둥이 형과의 비밀을 밝힌 남자와 결혼한 영임 그녀는 영민한 동물적 감각으로 승승장구 하지만 완벽한 가정을 위해 빼앗듯 태윤을 입양하고 금지옥엽으로 키우지만 기적처럼 자신의 아이가 찾아오자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태윤을 밀어낸다. 영임과 그녀의 진짜 가족들의 학대로 비틀어진 사랑을 갈구하는 태윤과 그 주위를 도는 남자들.

민주화를 위한 격변의 시대. 뛰어난 머리로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그곳에서 일상을 누리던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정우는 충동적으로 참여한 모임에서 그의 일상을 흔들게되는 두 여인을 만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내어주며 비밀스러운 사랑을 갈구하는 태윤,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애인을 빼앗아간 여자의 전 남자를 유혹하는 은희 그리고 그녀들에게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남자 정우. 그리고 이들의 아이 한나의 세상의 편견을 가볍게 무시하는 독립적인 사랑과 한나를 품는 남자 태영.

이들 모두의 사랑을 평범함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모두가 제도적인 안정 보다는 진심을 담은 사랑을 갈구한다고나 할까. 쉽지 않은 사랑속에 이들은 ‘사랑은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랑을 위한 결혼과 결혼을 위한 사랑.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닌 질문을 말이다.

"그렇게 거창한 아니구요.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이걸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거죠. 자유와 사랑이 우선이고, 형식과 의례는 미뤄도 된다는 쪽입니다. 굳이 선언하자면 '사랑 없는 결혼'보다는 '결혼 없는 사랑'을 지지한다 정도일 거예요." (p.264)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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