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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
태린 피셔 지음, 서나연 옮김 / 미래와사람 / 2021년 6월
평점 :
"난 혼자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인생 전체가 그랬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자신을 확신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것은 뭐든 거짓이었다. 내가 필요로 했던, 편안한 거짓이었다." (p.279)
'아내들'이라는 복수형 제목에서부터 뭔가 불합리한 냄새가 풀풀 풍겨온다. 오로지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만 바라봐야 하는 부부임에도 남편이 나 이외의 다른 여자들을 아내로 두고 있다는 상상하기도 싫은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 남편은 나를 만나러 온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이없는 상황을 견디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이해할 수 없지만 - 일단 내 일은 아니니까 - 상황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오래지 않은 역사 속에서 우리네 조상들도 당당히 처첩을 두고 사는 모습은 흔했으니 당황스럽지만, 아주 놀랍지는 않게 상황을 적응하고 읽어내려간다.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요일로 불리는 아내라 아무리 사랑한들 멀쩡한 멘탈로 버틸 수 있을까...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유타 출생의 세스와 세스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일부다처를 이해하는 법적인 아내 써스데이. 그들의 위태로운 결혼생활은 써스데이가 발견한 영수증 한켠의 이름으로 인해 균열이 시작된다. 세스의 월요일을 차지하며 그의 아이를 임신한 한나, 세스의 화요일을 차지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거부한 전부인 레지나 그리고 그의 목요일을 차지한 법적인 아내 써스데이.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조건은 단 하나. 남편의 다른 아내들에 대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이지만 그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남편의 다른 아내들이 궁금하다. 세스가 그녀에게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른 아내들을 묵인하고 있지만 그녀는 남편을 오롯이 차지하고 싶다. 남편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지 않은 당연한 본능이자 감정이 아닐까.
"내 속에서 거품처럼 흥분이 인다. 단지 남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만이 아니다. 집에 앉아서 세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흥분된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내 삶은 온통 기다림이다." (p.200)
우연히 발견한 월요일의 이름과 남편에게 걸려온 화요일의 전화는 그녀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걸음 한걸음 남편의 다른 아내들에게 다가갈수록 같은 처지에 놓은 그녀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그녀가 알고 있던 남편이 아닌 것만 같다. 이제 그녀는 남편의 다른 아내들이 궁금했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그녀들을 찾기 시작한다. 남편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위험하기까지 한 세스로부터 그녀들을 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을 차지하지만, 아무것도 추억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우리의 아기처럼, 우리 삶의 결합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런 유대감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 나는 갑자기 우울해진다. 함께 하는 우리 존재는 얄팍한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 무엇이 있을까? 섹스? 동지애? 생명을 세상에 가져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나는 멍하니 손을 뻗어 내 자궁에 올린다. 영원히 텅 빈 자궁." (p.106)
쎄스데이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여자로 세스의 야만적인 행동에 한껏 몰입되어 있는 즈음,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허를 찌른다. 과연 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상상할 수 없는 중혼인가! 파렴치한 외도인가! 마지막 장까지 흥미롭다.
세스와 세 아내의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등장한 질문은 범상치 않은 그들의 심리를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다. 만약 나라면?!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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