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리커버 에디션)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괴상한 세상, 절반은 어둠에 묻힌 세상에서 나는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을 찾아야 한다." (p.155)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에서 다시 한번 빠져드리는 시간... 영화가 1991년 개봉했으니까, 언제였는지 기억이 더듬어지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공포영화를 보면서 소리 지르기 좋은 여고시절이었으리라. 지금처럼 영화관이 쾌적하지도 않았고 개봉관과 함께 적당히 재개봉관도 섞여있던 시절. 어쩌면 공포영화를 보기에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시절 양들의 침묵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이후 한동안 어두컴컴한 골목을 나서는 일을 두렵게 만드는 영화였다. 심지어 짧지만 적당한 나의 몸집은 공포를 배가시키기에 충분했었다. 매력적인 살인마 안소니 홉킨스와 그에 뒤지지 않는 배짱을 지난 초보 FBI 수사관 조디 포스터의 긴장감 넘치는 대화와 가죽에 집착하는 살인마를 쫓는 과정이 끝내주는 영화였지...

영화가 개봉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화 ‘양들의 침묵’ 3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으로 만난 책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처럼 짜릿하고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끔찍한 식인 살인마와 저명한 정신의학자가 공존하는 인격은 그 자체만으로 양들의 침묵의 흡인력을 배가시킨다. 무분별한 살인을 일삼는 악의적인 살인마가 아니라 무례한 사람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택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식인을 행한다. 더불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 한 그의 눈빛(마구마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과 상대를 무한히 신뢰하며 존중하는 대화는 그를 희대의 살인마보다는 능력 있는 정신의학자로만 보이게 한다 - 이렇게 범죄자에게 동화되어 가나 보다... - 이미, 나에게 렉터 박사는 식인 살인마가 아닌 능력 있는 프로파일러다. 멋지다! 그의 능력을 가벼이 여긴 칠턴 패거리들을 비웃으며 한 사람만을 위한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연수생 신분으로 버팔로 빌 사건에 투입되어 한니발을 독대하는 스탈링 – 조디 포스터의 차가우면서도 고요한 눈빛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 그녀는 자신을 미끼 삼아 한니발과 아슬아슬한 게임을 이어간다. 단 몇 마디의 대화와 몸짓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두려움과 몸서리쳐지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버팔로 빌에게서 다음 피해자를 구할 수 없다는 무게가 공존한다. 마치, 탈출한 한니발이 어서 잡혔으면 하는 마음과 무사히 탈출했으면 하는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는 것처럼...

"요즘도 한 번씩 잠을 설치지 않나? 캄캄한 새벽에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잠을 깨지?" (p.321)

비정상적인 욕망을 위해 납치한 여성들의 가죽을 벗기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자신만의 증거를 남기는 연쇄살인마 버팔로 빌로부터 출발한 한니발과 스탈링의 인연은 어두운 핍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날개를 말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검은마녀나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골박각시나방은 경이로우면서도 무시무시했다.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커다란 날개는 마치 망토 같았고 털이 수북한 넓은 등에는 이름처럼 해골 무늬가 있었다. 행복한 정원에 이런 무늬의 나방이 갑작스레 날아들면 사람들은 모두 기겁할 테다. 무늬는 시커먼 눈구멍과 광대뼈, 눈 옆의 관골궁까지 사람의 두개골과 절묘하게 닮아 있었다." (p.362)

아직,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반드시 먼저 영화를 보고 책을 펼치기를 권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매력적인 모습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을 수 있을 것이다! 대사 한 줄 한 줄 소름 끼치지만, 역시 멋있다!

"번데기는 '변화'를 뜻해. 벌레가 나비 혹은 나방이 되는 거지. 빌리는 변화를 원해. 그래서 그는 진짜 여자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거야. 자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야 하니까 몸집 큰 여자들을 납치했지. 그동안 납치한 여자들을 보면 그가 '탈피'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 (p.231)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