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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평점 :
"지금까지 그런 여름이 세 번 있었다.
첫 번째 여름에 내 아버지가 죽었고,
두 번째 여름에 그 남자의 아버지가 죽었고,
세 번째 여름에는 내 남편이 죽었고,
네 번째 여름에는 내가 죽을 것이다.
그 전에 그들의 무덤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p.5)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서로를 잊지 못했던 이들이 그들만이 세상을 잊어가고, 세상을 등져야하는 길목에서 마침내 서로가 공유했던 비밀을 나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함께하지 못했던 이들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실패한 사랑을 만들고 결국 모두가 파국을 맞는다. 어긋난 사랑은 네 번째 여름 마지막 무덤을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덕자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 변질됐다. 늘 만선이 있던 자리에 익숙한 낚싯대만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해심 역시 물질을 하러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덕자는 직감했다. 만선이 자리를 비운 꽃섬은 더 이상 덕자가 알던 꽃섬이 아니었고, 해심이 없는 바다는 물색부터 초라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에 덕자는 주저앉아 울었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나만 두고 어디로 갔을까." (p.78)
피해자에게 편파적일 수도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꼼꼼한 수사와 높은 양형으로 성범죄를 처벌하고 있는 검사 정해심은 덕분에 '황금엉덩이'라는 웃지 못할 변명을 얻었다. 도대체 왜?! 평소 성범죄자들에 대한 형편없이 낮은 양형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나는 여성의 한사람으로 네 번째 여름이 담고 있는 비밀과 무관하게 정해심 검사에게 파이팅을 보태게 된다.
해심은 전직기자 출신의 엄마와 엄마의 그늘에 가려 항상 숨죽이고 있는 아빠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끝까지 묶여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치매에 걸린 아빠를 해심에게 맡겨둔 채 그녀만의 자유로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가 이해되지 않지만 적당히 엄마를 맞춰주고 있는 현실 모녀에게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부부의 세계를 이해시켜줄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난 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온 해심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어이없고 기가막힌 소식과 함께 보호자 방문을 요청 받는다. 모든 증거는 만선의 성범죄를 가리키고 피해자의 아들은 고액의 합의금을 요청하지만 해심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성범죄자에게 선처없는 처벌로 황금엉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해심에게 아버지의 성범죄로 회자될 미래가 가혹하기만 하다.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석연치 않은 정황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 대립하고,,,
"의심처럼 믿음도 천성적인 것이다. 남을 잘 믿어 사기당하는 피해자들이 당하고 또 당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믿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 없고, 믿으려 노력한다고 해서 믿을 수도 없다. 정해심은 '나'와 '너'를 공정하게 의심하는 만큼 '나'와 '너'를 공평하게 믿을 자신이 없다." (p.92)
해심은 황금엉덩이 검사 답게, 아버지의 성범죄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로 결심하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중,,, 운명의 장난처럼 과거를, 현재를 잃어가고 있는 아버지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또 하나의 해심을 마주하게 되고 오래전 만선의 고향, 앵강만에서 일어났던 욕심과 욕망과 이기심, 복수심으로 뒤얽힌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심은 또 다른 해심이 만선의 옆으로 돌아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가슴 한켠에 자리 잡은 사랑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남해의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애절하다.
"죽는다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니까. 그 여자는 네 아버지 무덤이야. 죽어서도 살아서도 네 아버지는 그 여자 무덤 속에 있을 거고." (p.227)
책을 다 읽고 난 후 처음부터 궁금했던, 글의 맥락상 병어이겠거니 했던 '덕자'를 찾아본다. 예상했던데로 '덕자'는 큰 병어를 부르는 전라로 사투리라고 한다. 보통의 병어가 아닌 평범함과 다른 '덕자'는 욕심으로부터 출발한 네 번째 여름이 전하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표현한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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