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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p. 108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오호! 역시나 에쿠니 가오리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12편의 단편이 강하지만 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젊은 목소리라기 보다는 묵직한 연륜이 배어있는 듯한 이야기를 절로 공감하게 된다. 누군가가 늘 옆에 있지만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나눌 수 없음을, 때문에 깊은 외로움과 연민으로 말미암아 언제든 펑펑 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한다.
"정말 멀리까지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멀리 와서,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기분이." (p. 169 손)
짧은 12편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단편집이지만, 뒤죽박죽 섞어놓은 비스킷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르지만 같은 맛을 내고 있는 사탕주머니 같가고 표현한 그녀의 후기가 맛깔스럽다. 다른 사랑을 하고,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고 있지만 결국엔 외로움에 젖어들어 이미 울 준비를 마친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담겨있다. 마치 12가지의 단편이 하나로 이어진 듯 느껴진다.
한 때는 그 사람밖에는 아무것도 마음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열렬히 사랑했지만, 이제는 무감해진 마음을 설명할 수 없는 허탈함의 표현이리라. 사랑이 무뎌진 채 덤덤하게 이어지는 일상을 벗어나, 고독과 함께하는 자유를 갈망한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출발한 사랑이 어느새 빛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사랑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결혼을 하고 열정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더이상 사랑을 위한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는 생기를 모습이다,,,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p. 89 골)
왜?! 이런 무감한 모습에 격한 공감이 생기는 걸까... 어쩌면 나 또한 무감한 사랑에 익숙해져 버린 채 열렬한 사랑 위한 에너지를 잊어버렸었나보다. 뒤죽박죽 비스켓처럼 나를 잊어버리고, 사랑을 잊어버린채 생기를 잃어버린 중년의 여성... 인정하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루지만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는 저주했다." (p. 189 울준비는 되어 있다)
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수 있는 것만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한 외로움... 에쿠니 가오리의 담백한 문장을 읽어내리다보면, 어느새 충만한 감성으로 그득해져 그녀가 전하는 작은 위로에 무너지듯 눈물을 툭하고 떨어뜨릴 것 같다. 훌쩍 느껴지는 세월이 슬퍼지는 시간이었다. 뒤죽박죽 비스켓 같은 모습이 아니라, 다른 듯 같은 올망졸망 모여있는 사탕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어진다.
"지난 1년, 사실은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모래를 퍼 올리면 우수수 떨어지듯, 그 일들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여겨진다. 요즘은, 일상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 143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
[ 네이버카페 소담북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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