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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늘 끔찍한 진실을 잊었다. 아니, 적어도 기억하지 않았다. 추한 것들을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p.289)
미국내 아시아계 혐오 범죄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화배우로 영광스러운 오스카상 후보(지금은 수상자지만)로 시상식장에 참석을 앞둔 여배우 윤여정은 혐오범죄 때문에 시상식 참석이 걱정된다는 인터뷰를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특별한 이유없이 단지 그들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폭력, 살인 등 혐오와 증오 범죄에 노출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들의 어이없는 선민의식과 피해의식 때문에 말이다.
스테프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1991년 미국의 코리아타운에서 일어난 한국인 두순자가 오렌지 주스를 사려던 흑인 소녀 라타샤를 강도로 오인하고 실랑이 끝에 총격을 가해 살해한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 시절 그 곳, 여전히 혐오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아시아인에 의한 흑인 살해 사건. 이 사건은 앞서 벌어진 백인 경찰의 흑인 청년에 대한 과잉진압과 폭행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로드니 킹' 사건 덕분에 흑인들의 분노를 한층 더 고조시키게 된다.
부모를 여의고 이모 집에서 살고 있던 남매 숀과 에이바의 비극은 낯선 곳에서 모든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 한정자의 두려움으로 부터 시작되고, 잊혀져 가고 있던 열여섯 어린 흑인 소녀의 죽음은 또 다른 희생자 흑인 소년 알폰소 쿠리엘의 추모식으로부터 다시 점화된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에이바의 남은 가족들과 한정자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본 박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정자의 가족들은 다시금 운명의 소용돌이 앞에서 조우한다. 28년이 지난 후 일어난 한 사건은 28년간 잊고 살았던 에이바의 동생 숀의 분노를, 28년간 모르고 살았던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를 분노를 깨운다. 서로가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 사건과 함께 말이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두 인종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들의 분노를 담담히 그려낸다.
"미리엄의 얼굴에 동정심이 떠올랐고, 그레이스는 다시 확신을 느꼈다. 형사와의 면담, 언니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표정, 중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레이스. 그리고 그 전, 몇 달, 몇 년 동안 느껴 온, 자신만 아주 중대한 사실을 모른다는 느낌. 가족이 왜 무너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레이스는 그 무엇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레이스가 모르는 사실을 미리엄이 감추고 있었다." (p.122)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백인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똑같은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선족, 중국인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단지 오렌지 주스를 사고 싶었던 열여섯 어린 소녀가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다면 두정자는 과연 그 어린 소녀에게 방아쇠를 당겼을까? 편협한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이 과연 백인들 뿐일까... 한번 읽고 내려놓을 소설이 아니라 무겁고 또 무겁게 읽어내려가야 할 글이었다.
"숀은 그들의 호의를 원치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씨 좋은 개자식들이 숀이 겪은 비극의 모닥불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 영혼을 데우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싫었다. 그는 영원히 억울한 흑인 아이였고, 선의를 지닌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제단이었다. 그들은 후원에 대한 대가로 그의 자비를 구했다. 에이바는 죽어서 자신의 비극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보지 못했지만, 숀은 살아서 그 꼴을 봐야 했다." (p.261)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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