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방
구소은 지음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신이 내 손에 지우개를 쥐여 준다면, 그래서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혹시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디를 지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어설픈 변명을 하게 된다. 색맹이나 색약이라는 유전적 증상을 가진 사람이 화가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지독한 편견일 뿐이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화가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견이 아닐까 싶다.


파란 하늘과 구름을 소재로 작품을 쌓아가고 있는, 화가 윤은 오랜 무명의 시간을 지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파란 하늘과 구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윤을 신들이 질투한 듯 개인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갈기갈기 찢긴 작품만을 남긴 채 윤은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난도질당한 작품과 함께 윤으로부터 이어진 악연이라 표현될 수밖에 없는 세 사람이 조우한다. 시리도록 차가운 파란 방, 그들은 지우고 싶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한다. 몸서리쳐지게 차가운 파란 방을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적록색맹을 지닌 화가 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윤을 불안하게 잡고 있는 아동심리사 은채,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누드모델이 된 희경, 결코 밝힐 수 없는 비밀을 지닌 성형외과 의사 주오까지... 이들은 윤의 그림을 매개로 거미줄처럼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결핍된, 지우고 싶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이들은 수면 아래 가라앉은 어두운 성(性)을 선택한다.


사랑, 그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비극이 반드시 슬픈 것은 아니다. 단지 아플 뿐, 그것이 사랑이다. 철없는 사랑이다. by 은채

사랑은 차갑다. 손을 델 것 같은 냉기, 드라이아이스 같은, 끝내 증발하고 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by 윤

사랑은 가볍다. 가벼운 건 쉽다. 고로 사랑은 쉽다. 그 가볍고 쉬운 걸 나는 갖지 못했다. by 희경

사랑은 난폭하다. 난폭함도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난폭함이 없듯 길들이지 못할 사랑도 없다. by 주오


각기 다른 결핍을 품고 있는 이들의 사랑이 안타깝다. 일생을 살면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랑'을 비극으로, 차가움으로, 가벼움으로, 난폭함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이들의 삶이 결코 따뜻해지지 못했을 사랑이 아쉬울 뿐이다. 틀린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이 지닌 결핍을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집착으로, 회피로, 유희로, 파괴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을 보듬고 싶어진다.


이들의 차가운 사랑보다는 다소 자극적인 묘사로 신경이 쏠리기도 하지만, 첫 장을 편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순간 이동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인간이 있다. 정직한 인간, 정직하지 않은 인간, 그 둘 다에 속하는 인간, 그리고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간,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p.312)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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